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된 후 살해되기까지의 과정을 둘러싸고 여야 가릴 것 없이 의혹를 제기하고 나섬에 따라 이 문제가 자칫 정치 쟁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여당의 일부 의원은 `김선일씨 피살의혹' 해소를 위한 청문회 실시 등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 규명을 주장하고 있어, 이라크 파병 재검토 논란과 더불어 정국에 적잖은 파장을 드리울 전망이다. 그러나 여야가 국회를 개원 이후 3주 이상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해 놓다가 김선일씨 피살사건 직후 긴급현안질의에 나서기로 하는 등 허둥대는 모습은 `사후약방문'격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정치권이 제기하고 있는 의혹의 핵심은 김씨의 피랍을 사전 인지한 미군이 우리 정부에 관련 정보를 신속히 통보했는지 여부에 있다. 미군이 상부 보고를 거쳐 피랍사실을 우리측에 통보하지 않았다면 동맹국에 대한 기본적인 신의 위반에 해당하는 문제라는 지적을 받을만 하다. 또 일부의 주장대로 김씨가 지난달 31일 납치됐다면 그가 소속된 가나무역측이 이 사실을 20일 이상 숨긴 채 정부에 알리지 않은 이유와 배경도 의문거리이다. 이와 관련,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도 23일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과 면담한 자리에서 "미국의 정보망이 대단한데 모르고 있었나"라며 의문을 표시했다. 김 의장은 "지금까지 정확한 정보파악이 안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개인회사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해도 대사관이나 정부 쪽에 즉각 신고가 안 되고 정부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간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윤호중(尹昊重) 의원은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 "만일 미군이 한국민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을 보고도 우리나라에 알리지 않았다면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고, 사실이라면 나름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파병 재검토를 주장하는 당내 의원들도 이날 결의안 제출에 앞서 별도 모임을 갖고 진상규명의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의안에 서명한 우원식(禹元植) 의원은 "피랍시기 등이 왜 정확하지 않은지, 그 과정에서 발생한 제반 상황을 좀 더 분명하게 국민한테 설명해야 한다"며 "의혹을 규명하지 않고 넘어가면 국민의 반발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은영(李銀榮) 의원도 "김선일씨가 납치돼 희생된 과정을 규명하는 것이 김씨에 대한 진정한 애도"라며 정부의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 소장파 등 당내 일각에서는 국회 청문회 실시를 공론화하는 문제를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뿐아니라 야권도 당국의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심 어린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황진하(黃震夏) 의원은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피랍일이 5월31일인지 6월17일인지 부터가 의문"이라고 말했고,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비대위 브리핑에서 "정부가 무엇을 갖고 협상에 임했는지에 대해 큰 의문과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김혜경(金惠敬) 대표는 "20일이란 상당한 기간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고, 미국이 정보를 모를 리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천영세(千永世)의원단대표는 "다른 경로를 통해서라도 국민 의혹을 꼭 해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여야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헌재(李憲宰) 총리 직무대행을 비롯한 관계 국무위원을 상대로 긴급현안질의를 벌일 예정이어서 지금까지 제기된 각종 의혹이 해소될 지 주목된다. 현안질의에 나설 한나라당 맹형규(孟亨奎) 의원은 "정부는 재외 국민이 위험에 빠지기 전에 모든 대책을 미리 강구해 놓아야 한다"면서 "우리는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과연 적절한 대처를 했는가를 추궁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반기문 장관은 이날 정당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국민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정확한 피랍일과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 장관은 "미 중부사령부에도 물어봤고 여러 채널로 접촉했는데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은 `(납치사실을) CNN보고 알았다'고 했고, 어제 시신도 미군이 발견해 알려줬다"며 "김 사장이 `미국으로부터 들었다'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확인해 줬다"고 해명했다. 김 사장은 "진술이 엇갈리는 점에 책임을 느낀다. 미안하다"고 정부측에 사과한 것으로 반 장관은 전했다. 열린우리당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중앙위원회에서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정치권이) 정쟁의 장과 분열로 가지 않을까 우려한다"며 "야당은 과거와 같이 정부에 대한 흠집내기만 해선 안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