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만 해도 살아있다더니…. 이게 무슨 마른 하늘 날벼락이냐. 정부가 제대로 대처를 못해 아들을 죽였다. 살려내라." 23일 새벽 1시48분께 부산 범일동 자택에서 TV 방송자막을 통해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결국 참수됐다는 비보를 접한 김씨 부모 등 가족들은 오열 속에 고인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김씨의 생사가 확인되고 '요구시한'이 연기되면서 김씨 석방을 위한 다각적인 교섭이 급물살을 타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희망에 부풀었던 가족들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였다. 자택에서 TV를 지켜보며 석방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아버지 김종규씨(69)는 "어제까지만 해도 정부가 살아있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선일아…, 선일아"를 외치며 쓰러졌다. 어머니 신영자씨도 아들 이름을 부르며 "불쌍해서 어쩌나, 이 일을 어찌할꼬"를 되뇌며 한때 실신해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큰 누나 향림씨(41)와 작은 누나 미정씨(38), 여동생 정숙씨(32)도 선일씨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김씨 부모는 "아들이 살해위험에 처했는데도 정부가 추가파병 방침을 밝혀 죽게 했다"며 "시신을 외교통상부 건물에 묻겠다"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웃주민 30여명도 잠옷바람으로 달려나와 "살아서 돌아온다더니 이게 무슨 일이냐"며 가족들을 부둥켜안고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고 김선일씨의 임시빈소가 마련된 부산의료원 장례식장 1호실에는 일반시민 등 각계의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조화가 도착한데 이어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도 김씨의 빈소를 찾았다. 부산 동구 범일동 안창마을에서 고아원인 '우리들의 집'을 20여년째 운영해 오고 있는 독일인 루미네 수녀(63)가 빈소를 찾았다. 루미네 수녀는 "마음이 너무 아파 유족을 위로하고 기도를 드리러 왔다"며 "피랍 소식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작으나마 귀환에 힘을 보탤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경남 의령에 사는 전태만씨(64)는 "쿠웨이트에서 일한 적이 있어 남의 일 같지 않아 무작정 왔다"고 말했다. 선일씨가 다녔던 신학교의 목사와 모교인 용인고교 후배, 경성대 후배 등 30여명도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부산시는 빈소 마련에 앞서 이날 오전 허남식 부산시장 주재로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장례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미국과 우리 정부에 조속한 시신송환을 촉구하고 모든 장례절차를 적극 지원키로 했다. 시는 또 행자부 등 정부와 협의해 부산의료원에 마련된 빈소 외에 일반 시민들의 조문을 위해 몇 개소의 분향소를 별도 설치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