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해외 기업 사냥에 나섰다. 10년 넘게 주춤했던 일본 기업들의 해외 기업 인수ㆍ합병(M&A)이 올 1∼5월 1백6건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늘었다고 일본 M&A 컨설팅ㆍ중개업체 리코프가 최근 밝혔다. 액수가 공개된 M&A들만 해도 6천4백94억엔에 달해 지난해 전체 실적 5천3백51억엔을 이미 돌파했다. 대상 지역은 아시아가 가장 많았다. 일본 기업들은 중국 기업 15개를 포함한 아시아 기업 45개, 미국 업체 36개, 유럽 회사 19개의 지분을 인수했다. 업종은 식품 IT(정보기술) 보험 바이오에 걸쳐 편식 없이 고르게 투자했다. ◆ 실적 개선으로 현금 여력 증가 =실적 개선과 주가 상승으로 현금을 손에 쥐고, 구조조정 덕에 금융비용까지 줄어든 것이 주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도쿄 증시(금융 제외)는 올들어 3월까지 67% 올라 비금융권 상장기업 시가총액이 처음으로 11조엔을 돌파했고, 부채비율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꾸준히 떨어져 일본인들이 미국 자산 사냥에 열을 올렸던 1980년대 중반 수준을 회복했다. 이같은 현금 여력에 힘입어 성장시장 선점을 위한 중국 진출이 두드러졌다. 식품회사 니신은 중국 라면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화룽그룹에 2백억엔을 주고 지분 33.4%를 확보했다. 팡볜멘(方便麵ㆍ라면의 중국어)이라는 말을 만든 화룽은 중국의 원조 라면회사로 20%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아사히맥주와 이토추상사는 대만계 중국 기업 캉스푸(康師傅)의 청량음료 사업에 3백80억엔을 투자해 지분 50%를 인수했다. 이 밖에 미쓰이스미토모보험은 국내 성장이 한계에 부딪치자 태국에 상륙, 방콕생명 지분 10%와 야유디아화재 지분 24.9%를 인수했다. ◆ 1980년대와는 달라 =최근 일본 기업의 해외 기업 M&A는 1980년대 말을 연상시키지만 성격은 명분에서 실리로 완전히 바뀌었다. 일본인들은 당시 고속 성장으로 자신감이 생기자 미국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거나(1989년 소니의 컬럼비아픽처스), 상징적인 부동산을 경쟁적으로 사들여(같은 해 미쓰비시부동산의 뉴욕 록펠러센터) 일본 자본에 대한 공포감까지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최근의 M&A는 소유권에는 관심이 없고, 지분 투자와 전략적 제휴가 주를 이루는게 특징이다. 다케다약품이 미국법인인 다케다리서치를 이용해 영국 렉터스 등 3개사의 바이오벤처 사업에 지분 투자한 것이 대표적이다. 목적도 구체적으로 바뀌어 중국 캉스푸에 공동 투자한 아사히와 이토추는 이 회사의 청량음료사업부 지분 50%만 인수했다. 일본 기업에 의한 M&A는 해외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본 내에서도 증가 추세다. 리코프에 따르면 일본 회사에 의한 일본 기업 투자는 지난해 1천3백52건이 발생해 1998년에 비해 세배 늘었고 올들어서도 5개월간 전년 동기 대비 21% 늘어난 6백90건을 기록하는 등 확장 추세다. 다만 일본 회사끼리의 M&A는 주가 상승과 현금 여력 증가라는 배경은 같지만 사업 확장을 위한 해외 기업 M&A와는 달리 장기 불황이 초래한 구조조정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이 다르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