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정지선 단속을 시작한지 보름이 지났다. 정지선 단속은 정곡을 찌른 혁신인가 아니면 관료적 탁상행정일 뿐일까. 결론을 내기 전에 먼저 변화의 메커니즘을 살펴보자.사회를 뒤바꾸는 큰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어느 한 순간 폭발적으로 모든 것이 변한다. 지난 70년대 미국 북동부 한 지역의 예를 보면 흑인들이 조금씩 이사올 때는 별 움직임이 없다가 흑인 인구가 전체의 20%에 달하자 백인들이 한순간에 모두 떠나버렸다. 새 상품이 '대박'을 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1984년 발명된 팩시밀리는 몇해 동안 한해 평균 8만대 정도 판매됐지만 87년에만 1백만대가 팔려나가면서 사무기기의 총아로 떠올랐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늘어나다 갑자기 폭발적인 확산 현상을 보이는 순간을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라고 부른다. 물론 모든 상품이나 개선활동마다 이런 티핑포인트가 반드시 생기는 것은 아니다. 고객들이 원하는 상품이어야 하고 다른 개선활동에 연쇄적으로 에너지를 전파할 수 있는 ?급소?혹은 핵심 아이템이어야 '폭발적 확산'을 기대할 수 있다. 가치혁신(Value Innovation)론의 창시자인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는 변화의 중심이 되는 핵심인자를 찾아내는 공략법으로 '티핑포인트 리더십'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로 윌리엄 브래튼 전 뉴욕경찰국장(현 LA경찰국장)을 들고 있다. 이전의 뉴욕 경찰간부들은 강도 살인 마약 등 중범죄 단속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런 중범죄가 시민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브래튼의 처방은 달랐다.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니 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다름아닌 동냥배 소매치기 등 경범죄 단속이었다. 브래튼이 찾아낸 '급소'인 경범죄 단속이 어떻게 티핑포인트를 불러왔는지는 공중 화장실 단속의 예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공중화장실은 단속도 쉽고 예산도 많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중범죄에 쓰일 수 있는 총,칼 등 흉기와 마약류를 적발할 수 있었고 수배자들을 다수 검거했다. 공중화장실과 지하철을 중심으로 한 경범죄 단속은 마침내 티핑포인트를 불러왔다. 그가 재임한 2년 동안 뉴욕시의 살인사건은 50%가 줄었고 절도도 39% 감소했다. 경찰신뢰도는 37%에서 73%로 높아졌다. 경범죄라는 '급소'를 찔러 중범죄까지 죽인 셈이었다. 우리 경찰이 이달들어 벌이고 있는 정지선 단속도 티핑포인트를 지향한 '급소'의 한 예다. 정지선 단속을 통해 횡단보도 사고,교차로 정체 및 충돌·과속사고가 연쇄적으로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경찰청 추산에 따르면 교통법규 준수율이 50%에서 80%로 높아졌다. 초기에 불만의 목소리로 인터넷을 달구던 운전자들도 목소리를 낮춰가고 있다. 왜 불만이 줄어드는 반면 효과는 높아지고 있는 것일까. 바로 이 정지선 단속이 시민의 입장에서 다시 보아낸 '가치'라는 데 있다. 정지선 단속의 진정한 '고객'은 운전자가 아니라 예전에는 교통법규의 '비(非)고객'이었던 보행자다. 보행자들 입장에서 보면 정지선 단속은 뉴욕 경찰의 공중화장실 단속 못지않게 새로운 가치를 주는 급소인 것이다. 혁신을 가치지향적인 변화논리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그 출발점은 바로 언젠가는 폭발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급소 혹은 핵심 아이템을 찾는 일이다. 방법은 고객의 편에 서면 된다. 고객이 원하는 것,시민이 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이왕이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려워하는 것을 찾으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들어 부쩍 강조하고 있는 정부혁신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누구를 위한 혁신인지를 묻고 급소가 무엇인지에 주목할 때 가닥이 잡힐 것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