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멋있는 말들이 참 많다. '혁신주도형 경제(Innovation-driven Economy)'라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기각 후 대(對)국민담화에서 혁신주도형 경제를 거론했다. 그래선지 요즘 미래와 관련된 정부 정책이라면 이 말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우리는 정말 혁신주도형 경제로 이행할 준비가 돼 있는 걸까. 대통령이 말한 혁신주도형 경제가 국민들에게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다고 판단했음인지 청와대 브리핑은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슘페터를 거론하면서 혁신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이제는 과거의 요소투입형 발전전략에서 벗어나 질적인 성장모델,즉 혁신에 기반한 성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투자가 좀체 살아나지 않는 상황이고 보면 '투자주도형'도 아쉬운 판에 무슨 혁신주도형이냐는 비판의 소리도 나올 법하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그렇게 가야 한다는 방향 자체에는 별 다른 이견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멋있는 말일수록 그에 합당한 전제조건이 붙게 마련이다. 혁신주도형 경제라고 하면 마이클 포터(Michael E.Porter)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한 국가의 발전과정을 '요소주도→투자주도→혁신주도→부(富)주도'라는 단계적 개념으로 설명했다. 물론 이행의 조건도 적시하고 있다. 그 중에는 혁신주도형 경제로 옮겨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대통령이나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몇가지만 간추리면 이렇다. "혁신주도형으로 가려고 한다면 기업들이 그 주동자(主動者·Prime Mover)여야 한다." "기업들은 새로이 시작할 신규 사업이 무엇이건 선택권을 가져야 하고,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자유를 누려야 한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기업들이 혁신적이고 역동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의사결정자가 아닌 촉진자로 변해야 하며,기업에 대한 간섭을 실질적으로 줄여야만 한다." 비슷한 얘기가 반복되다시피 하고 있어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다. 우리는 과연 혁신주도형 경제를 말할 만큼 대통령과 정부는 변하고 있고,또 기업들은 혁신을 위한 모티베이션이 충만한가. 현실은 혁신을 말하기에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혁신주도형 경제의 주동자인 기업과 시장은 정부의 로드맵에 따른 개혁의 대상일 뿐이다. 정부는 여전히 변치 않은 주동자다. 규제당국은 말한다. 기업들이 무엇이 걸림돌이 돼서 투자를 못하고 있는지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로 적시하라고.오로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만 허용해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기업가 정신이 발동할리 없다. 혁신주도형 경제로 가자는 마당에 사회공헌기금 논란은 또 어떤가. 어찌 보면 이것은 오래 전에 혁신주도형 경제에 진입했거나 부가 주도하는 단계에 있는 국가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국가들마저도 모티베이션과 경쟁을 되살려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자며 다시 돌아오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정부 조직은 커져만 간다. '혁신주도'는 곧 '정부주도'라는 얘기일까. 과학기술부를 부총리 부처로 격상시키고,차관도 둘을 두겠다고 하는 것 역시 혁신주도형 경제로 가기 위해서라고 정부는 말한다. 그렇게 해서 혁신주도형 경제가 된다면 못할 나라가 이 지구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고 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왜 포터가 "새로운 발전 단계로 이행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과거의 정책이 반(反)생산적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권한과 영향력을 기꺼이 포기하려 들지 않는 정부들이 많다"고 했는지….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