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사에서 대통령과 총리와의 갈등은 드문 일이었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의 권력에 대해 총리라도 감히 거스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안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손꼽는다면 김영삼(YS) 전 대통령 시절 이회창 전 총리가 '소신의 칼'을 뽑았다가 갈등을 빚어 4개월만에 물러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당시 대법관인 이회창씨를 감사원장에 이어 총리에 임명했다. 그러나 임명 4개월 만인 94년4월 이 전 총리는 YS와 갈등 끝에 총리직을 사임했다. 당시 이 총리는 김 대통령이 주재하는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에 총리가 배제돼 있는 것은 잘못됐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경제 사회부처의 인사권에도 영향력을 행사해 보겠다는 의지를 비친 게 김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후 이 전 총리는 야인으로서 정치와 무관한 행보를 보이다가 96년 총선을 통해 선대위원장으로 복귀했고 대권을 넘보는 반열에 성큼 올라서게 됐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