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완카 호수에서 투 잭 호수로 이어지는 길목.


한 고개 넘어 막 속력을 내려던 버스가 길가에 가만히 멈추어 섰다.


앞에는 승용차 한 대가 비상등을 깜빡이며 서 있다.


무슨 일일까.


오가는 차의 대수를 기억할 정도로 한갓진 시골길인지라 차가 고장났다면 그런 낭패가 없을 듯 했다.


프로 가이드 겸 운전기사인 로버트씨의 설명이 뜻밖이었다.


"고장난게 아니예요. 차가 서 있으면 가까이에 야생동물이 있다는 것이지요. 자, 왼쪽을 보세요."


가벼운 탄성이 터졌다.


건너편 길 가의 땅에 배를 댄 채 고개를 치켜 든 큰뿔산양 한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둥글게 휘어 넘어간 머리 위 두개의 굵은 뿔과 가슴팎의 두터운 근육이 당당해 보였다.


멀리 흰 눈을 인 뾰족산, 그 아래 시원스레 펼쳐진 미네완카 호수가 그 야생의 아름다움을 더해주었다.



이어진 길 왼편의 투 잭 호숫가.


큰뿔산양 한마리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는 듯 예닐곱 마리가 떼로 몰려 있다.


호수쪽으로 가파르게 경사진 곳에 몸을 맞대고 서서 땅을 핥고 있다.


겨우내 부족했던 소금기를 섭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까이 다가서면 도망갈 것이란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간다.


각별히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이들도 알고 있는 것일까.


이따금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심드렁한 표정들이 같이 한번 뛰어 놀아보자는 투다.


연금술사의 노련한 손끝에서 나온 색깔인 양 오묘한 에메랄드빛 호수물도 어서 문명의 옷을 벗어던지라며 유혹하는 것 같다.


캐나디언 로키의 남쪽 들머리, 밴프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원초적 자연'이었다.


그것은 캐나디언 로키의 백미로 꼽히는 밴프∼재스퍼간 환상의 7백50리 길 내내 이어질 것이기도 했다.


밴프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중심거리인 밴프애비뉴를 따라 상점과 호텔, 그리고 미니 박물관들이 늘어서 있는데 걸어서 한두 시간이면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다.


상주인구는 5천명.


그러나 관광철만 되면 하루에도 마을사람의 네댓 배가 넘는 관광객들로 북적댄단다.


캐나다 최초로 지정된 국립공원인 밴프국립공원의 중심마을이며, 캐나디언 로키 여행의 남쪽 들머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을 남쪽 끝 설퍼산으로 향한다.


설퍼산은 밴프 제일의 관광포인트.


해발 2천2백81m의 전망대까지 곤돌라가 놓여 있다.


전망대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8분.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의 마지막 구간처럼 가파른 코스를 치닫는다.


먹먹해진 귀를 뚫으려 마른 침을 한번 삼키면 어느새 전망대.


빙 둘러 눈을 인 산줄기, 홀쭉하게 하늘을 향해 선 웨스턴 붉은 삼나무숲의 푸르름,그보다 더 푸른 하늘과 점점이 흐르는 구름, 그리고 바람… 장쾌하게 펼쳐진 풍광에 눈이 맑아지고 묵은 체증이 씻겨 내려간다.


전망대 옆 5m 더 높은 샌슨스 피크까지 트레킹 길이 잘 나 있다.


왕복 30분.


전망대에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간간이 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풍광이 또다른 느낌을 안겨준다.


산아래 곤돌라 탑승장 옆에 어퍼 핫 스프링스가 있다.


1백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유황온천이다.


이 온천이 발견되면서 산의 이름이 설퍼(유황)가 됐으며, 밴프지역이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게 됐다고 한다.


온천장은 노천 수영장 형태.


야간 조명 아래에서의 온천욕이 즐겁고, 겨울철 눈을 맞으며 하는 온천욕도 그만이란다.


호텔이 관광거리다?


밴프 스프링스 호텔이라면 틀리지 않는 말이다.


누가 지었는지 딱 어울리는 서프라이즈(깜짝) 코너에 서 보면 알 수 있다.


푸른 삼나무 숲에 우뚝한 중세 유럽 고성 같은 분위기의 호텔 전경이 그렇게 멋있을수 없다.


마을 남쪽으로 작은 폭포가 돼 떨어지는 보우강 건너편의 캐스케이드 가든에 서면 또다른 밴프 전경이 펼쳐진다.


정면에 불끈 솟은 캐스케이드산, 그 속을 뚫고 들어갈 듯 나 있는 밴프애비뉴의 모습이 달력사진에 나오는 그대로다.


그리고 어스레해질 때 마을까지 내려와 집 앞뜰의 풀을 뜯는 엘크를 마주하는 순간의 느낌을 어디에 비길수 있을까.


캐나다를 가로지르는 세계 최장의 고속도로, 트랜드 캐나다 하이웨이를 탄다.


레이크 루이스가 목적지다.


도중에 만나는 캐슬마운틴이 웅장하다.


원래는 아이젠하워산으로 이름지으려 했는데 명명식에 초청한 아이젠하워가 밴프에서 골프를 치느라 나타나지 않자 그냥 캐슬마운틴으로 부르게 되었다나?


잠시 샛길로 빠져 요호국립공원의 명소 에메랄드호, 내추럴 록브리지를 둘러 레이크 루이스로 들어선다.


레이크 루이스는 캐나디안 로키의 그 많은 호수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꼽히는 곳.


산정에 2단 빙하가 흐르는 빅토리아산을 중심으로 빙 둘러쳐진 산자락에 안겨 있다.


그 앞에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 호텔이 자리하고 있다.


아침이나 오후 햇빛이 비낄 때 별처럼 빛나는 빅토리아산정의 빙하와 그 모습이 반영된 호수의 모습이 기막히다.


호수 둘레에 트레일 코스가 잘 나 있어 산책과 승마체험을 하기 좋다.


자, 이제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탈 차례다.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는 보통 레이크 루이스 부근의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 교차점에서 재스퍼까지 2백40km의 93번 국도를 말한다.


2백여개의 빙하와 수많은 호수가 근육질의 캐나디안 로키를 장식하고 있다.


길은 해발 1천m의 낮은(?) 골짜기 5곳과 해발 2천m급 보우고개, 선웝터고개를 오르내린다.


크로우 풋 빙하가 눈길을 끈다.


산정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세갈래로 흘러내린 빙하인데, 발가락이 세개인 까마귀 발을 닮아 그렇게 부른단다.


지금은 맨 아래쪽 빙하가 뚝 부러져 내려 부상당한 크로우 풋 빙하가 돼 버렸다.


보우빙하, 피라미드봉우리와 새가 날개를 펴고 내려오는 형상의 빙하, 글래시어레이크 등을 지나 달리던 버스가 길가에 멈춰선다.


야생동물이 있다는 뜻.


멀리 절벽 중간에 하얀 털의 산양의 움직임이 보인다.


빙벽등반 명소인 눈물의 벽을 지나면 선웝터고개.


아이스필드 파크웨이의 깊은 계곡길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리고 컬럼비아 대빙원이 펼쳐진다.


컬럼비아 대빙원은 북반구에서 북극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빙원.


밴쿠버 전체 면적에 맞먹는다.


22개 산봉우리로 둘러싸여 있으며 깊이는 3백m.


일반 관광객은 빙원까지 올라갈수 없어 아쉽다.


대신 빙원에서 흘러내린 빙하의 하나인 애서배스카빙하를 밟아볼수 있다.


아이스필드센터에서 출발, 설상차인 스노익스플로러를 갈아 타고 올라가 내려올 때까지 총 1시간30분 정도 빙하체험을 하는 것.


이 빙하는 그러나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한 해에 15m 정도의 빙하가 생기는데 여름이면 25m씩 녹아내려 해마다 10m 정도 위로 밀리고 있다는 것.


아래쪽 모레인(빙하에 포함된 모래와 자갈만이 남아 있는 곳) 지대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수 있다.


컬럼비아 대빙원에서 재스퍼까지의 남은 길도 흥미로움의 연속.


간간이 쉴 시간을 주는 야생동물들이 반갑고, 애서배스카 협곡 폭포의 계곡미와 물소리가 피로를 풀어준다.


피라미드산을 지나면 재스퍼.


캐나디안 로키의 국립공원중 가장 큰 재스퍼국립공원의 중심이다.


평화롭고 한가로운 시골 분위기가 마음을 넉넉하게 해준다.


피라미드호와 패트리샤호, 멀린계곡 등이 필수 코스.


역시 야생동물 천국이다.


수줍음을 타는 흰꼬리사슴, 귀가 큰 뮬사슴, 가족나들이 나온 엘크, 일만 하는 비버에 코요테까지….


그 풍부한 야생의 자연을 다른 어떤 곳에서 즐길수 있을까.


그게 밴프~재스퍼를 아우르는 캐나디안 로키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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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수첩 >


캐나디안 로키 여행은 밴쿠버에서 국내선을 타고 캘거리로 가 밴프~재스퍼로 올라가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에드먼턴까지 항공으로 이동, 재스퍼에서부터 내려오기도 한다.


인천~밴쿠버 직항편을 매일 운항하고 있는 에어캐나다(02-3788-0134)를 이용하면 경제적이다.


다른 항공사와는 달리 각 구간 국내선 항공티켓을 별도로 구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캐나디안 로키는 렌터카 여행을 하기에 좋다.


에어캐나다의 개별여행상품인 '에어캐나다 할리데이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5개의 주제, 총 33개의 상품으로 구성돼 있다.


기본 일정 이외에는 자신의 입맞에 따라 맞춤여행식으로 재구성할수 있는 점이 특징.


에어캐나다가 추천하는 일정 중 하나는 8일 일정의 '레이크&마운틴'.


아이스필스 파크웨이를 타고 밴프~레이크 루이스~재스퍼를 둘러본 다음 재스퍼에서 국영철도인 VIA레일(침대칸)을 타고 밴쿠버까지 철도여행을 한다.


캐나다 서부지역 최대 여행사로 밴프의 설퍼산곤돌라, 마운트 로열호텔, 컬럼비아 아이스필드 설상차 등도 운영하고 있는 브루스터사가 현지여행을 안내한다.


2인1실 기준 어른 1인당 6월28일까지 3백9만원, 6월29일~7월22일 3백29만원, 7월23일~8월6일 3백49만원.


하나투어(02-2127-1205), 모두투어(02-728-8250)가 에어캐나다 할리데이스 상품을 판매한다.



밴프ㆍ재스퍼=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