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제작 쇼이스트ㆍ에그필름)가 제57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한 것은 50여년 숙원을 풀어준 `취화선'의 감독상(임권택) 수상 못지않은, 어쩌면 이를 뛰어넘는 쾌거로 꼽힌다.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이 미군의 이라크전포로 학대 파문과 맞물려 영화제 내내 화제를 모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작품성으로는 심사위원단으로부터 최고의 평가를 받은 것이나 진배없다. 홍콩 왕자웨이(王家衛)의 `2046',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와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 `이노센스', 태국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의 `크로피칼 맬러디' 등 아시아 영화가 대거 진출한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아 그 의미가더욱 크다. 심사위원대상은 황금종려상 다음 가는 2등상. 우리나라가 세계 3대 메이저 영화제에서 이 상을 받은 것도 처음이지만 역대 수상작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87년 `씨받이'(감독 임권택)의 강수연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때만 해도 한국의 토속적 정서를 담은 영화에 대해 호기심을 보인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 덕분으로 풀이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2002년 5월 `취화선'의 감독상(임권택) 수상 역시 빼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오리엔탈리즘의 영향과 함께 그동안 영화계에 남긴 거장의 업적을 예우하려는 분위기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그해 9월 `오아시스'(감독 이창동)와 지난 2월 `사마리아'(감독 김기덕)의 감독상 수상은 작품 자체로 평가를 받았다는 측면이 강하다. 심사위원들이 새로운 소재와 주제, 그리고 치열한 작가정신에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올드보이'는 지난해 11월 국내에서 개봉돼 330만명을 동원하는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예술영화 취향의 유럽 메이저 영화제에서 이른바 `웰 메이드'(Well-Made)상업영화가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또한 박찬욱 감독이 평소 프랑스 필름느와르 전통과 B급영화 분위기에 대한 애정을 표시해왔고 실제로도 `올드보이'에 그런 색채가 많이 묻어 있음을 감안하면 칸영화제로서도 과감한 노선 변화를 시도한 셈이다. 물론 영화제 수상 결과를 올림픽 메달 성적처럼 받아들이려는 태도에는 문제가있다. 심사위원들의 취향이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영화제의 전통, 그해 초청작의경향, 사회적 이슈 등에도 영향을 크게 받는다. 올해 황금종려상이 이라크전에 영향을 많이 받았듯이 심사위원대상도 심사위원장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의중이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최근 몇해 동안 한국영화가 국내외 시장에서 크게 선전하는 가운데 올해 칸 필름마켓에서도높은 인기를 누린 것도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샀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영화가 올들어 메이저 영화제에서 연거푸 수상하면서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대상까지 거머쥠으로써 한국영화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게 됐다. 영화제를 비롯한 국제 모임에서도 발언권이 한층 높아질 뿐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할 수있게 됐다. 박찬욱 감독 개인으로서도 이번 수상은 대단히 뜻깊다. 그는 `공동경비구역 JSA'로 흥행 신화를 만든 데 이어 메이저 영화제 수상이라는 훈장까지 달게 됐다. 영화제 수상과 흥행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감독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을 뿐아니라 국내에서는 `국민감독' 임권택이 유일하다. 영화평론가 양윤모씨는 "유럽식 아트 영화와 할리우드식 장르 영화로 양분되던영화계에서 박찬욱 감독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흐름에서 떨어져나와 필름느와르 전통을 만든 장 피에르 멜빌이나 할리우드식 영화문법을 전복한 미국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일찍부터 주류 영화담론에 저항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다"면서 "재미있으면서도 예술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려는 박찬욱 감독의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세계영화계가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화제에서 기자와 평론가로부터 극찬을 받은 주연배우 최민식도 세계적인 연기파 배우로 널리 알려질 기회를 얻게 됐고, `친구'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사업적으로큰 곤란을 겪었던 공동제작자 김동주 쇼이스트 대표와 영화 전문기자 출신으로 `클래식' 등을 제작해온 지영준 에그필름 대표도 칸 영화제 수상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이제 한국영화계에 마지막 남은 숙원은 3대 메이저 영화제 최고상 수상과 미국아카데미 수상뿐이다. 이 숙원이 언제 누구의 손으로 풀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