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은 인간에게 "피와 생명의 색"이다. 절대 권력의 상징이며 환희의 색,사랑의 색이기도 하다. 21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펼쳐지는 "천년의 색"전은 "빨강"이라는 색이 갖는 의미를 미술품을 통해 조명한 이색전이다. 고미술과 현대미술 50여점이 전시된다. ◆고미술=도자 중에서도 가장 보기 힘들다는 진사(辰砂)백자 20여점이 출품돼 눈길을 끈다. 진사는 "백자에 붉은 물이 한 방울 들어가면 열 배로 귀해지고 청자에 진사가 들어가면 가격이 백 배 비싸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귀한 도자다. 진사가 귀한 이유는 도자를 굽는 과정에서 색깔이 선명하게 나올 확률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광주요와 개성에서 제작됐는데 작품 수가 매우 적은 게 특징이다. 조선시대에는 '주점(朱點)사기' '진홍(眞紅)사기'라고 불리다가 진사백자라는 명칭은 20세기에 붙여졌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백자진사연화문호' '백자진사당초문각병' '백자진사화문호'를 비롯해 고려시대의 진사청자인 '청자국화문유병' '청자상감진사국화문병',사대부 선비들이 사용했던 연적인 '청화백자진사복숭아형연적' '청화백자진사금강산연적' 등이 선보인다. 이밖에 조선시대 궁중에서만 사용했던 주칠(朱漆)가구 소반 좌경 등도 출품된다. ◆현대미술=이중섭의 1950년대 작품인 '싸우는 소'를 비롯해 김환기의 대표작으로 화면 전체를 붉은 색으로 대담하게 처리한 '무제'시리즈,김흥수 화백의 '파천',화려한 색감이 화면을 지배하는 유영국의 '작품'시리즈 등이 나온다. 이중섭 화백이 남긴 몇 안되는 유화 중 하나인 '싸우는 소'는 소 두마리가 정면 대결을 벌이는 모습을 담았다. 선이 극도로 거칠고 청색·홍색·흑색 등 색채가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색감은 일제시대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작가의 내면적 분노를 상징한다. 김환기의 '무제'시리즈는 회화를 하나의 평면적인 색면으로 처리한 대담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임옥상의 1980년작 '웅덩이'는 마치 핵폭발을 연상시키는 붉은 화면 이미지를 통해 현실사회를 고발했다. 6월20일까지.(02)720-1020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