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의 프로골퍼 연덕춘(延德春)옹이 11일오전 9시께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연덕춘옹은 국내 1호 프로골프 선수이자 국내 프로골프의 기틀을 다지는 등 평생을 골프와 함께 한 한국 골프의 산증인이다.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난 연덕춘옹은 일제 강점기인 1935년 한국 골프의 `메카'로 불렸던 경성구락부에서 골프채를 잡기 시작, 일본으로 골프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골프라는 스포츠 자체가 생경했던 터라 주변에서는 모두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빗발쳤다. 그러나 연 옹의 유학을 시작으로 뿌리를 내린 한국골프가 최근 세계무대를 주름잡는 골퍼들을 양산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의 유학은 한국 골프의 씨앗을 심었던 중대한 역사로 평가받을만하다. 쉽지 않은 유학길에서 연 옹이 보여준 놀라운 성장세도 두고두고 화젯거리. 연 옹은 일본인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지 불과 3개월만인 1935년 관동골프협회에서 프로자격을 얻었고 2년 만에 일본오픈골프선수권대회 8위에 입상한 것. 더욱이 4년 뒤인 1941년에는 같은 대회에 출전, 우승컵을 거머쥐며 일본 열도를놀라게 했을 정도였다는 게 골프계 원로들의 설명이다. 연 옹은 해방후인 1956년 필리핀에서 열린 극동오픈골프선수권에 나가 국제대회에 출전한 한국선수 1호가 됐고 1958년에는 국내에서 열린 첫 골프대회인 한국프로골프선수권을 제패, 국내 대회 첫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를 누비는 최경주(34.슈페리어.테일러메이드)와 허석호(31.이동수골프)가 출전해 화제를 모았던 브리티시오픈, 월드컵골프 등도 한국 골프1세대의 대표주자인 연 옹이 길을 텄다. 연 옹은 이밖에도 1963년 친목단체인 `프로골프회'를 한단계 발전시켜 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협회 2대 회장을 맡아 한국 골프행정 기반 마련에도 자취를 남겼다. 한편 유해는 서울 아산병원 33호에 안치됐다. 발인은 13일 오전 7시이고 장례는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상조회장으로 치러진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훈기자 meola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