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사천시 사남면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천공장. 20만평의 부지를 활용,중간에 기둥이 하나도 없는 '무주(無柱)공법'으로 지어진 넓은 공간에서 각기 다른 모양의 비행체들을 조립하는 5백여명 직원들이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다. 국방부에 납품할 KF-16의 마지막 1백40대째에 대한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공장 한 켠에선 한국항공우주가 세계 12번째로 독자개발에 성공한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골든이글'의 양산제품이 조립되고 있다. "내년 10월부터 정부에 94대를 납품하지만 그보다는 수출을 더 늘리려 계획하고 있습니다."(홍강표 사업관리담당 이사) 그러나 분주히 돌아가는 공장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관리자들의 모습은 밝지 않다. "보시다시피 항공기 통합법인으로 출범한 지 5년 만에 고등항공기 독자개발과 생산이 이뤄지는 등 지금까지 순조로운 성장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후속 프로젝트 결정이 늦어지면서 일감을 확보하지 못해 고급 엔지니어들까지 감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 엔지니어는 성장의 한계를 느낀다며 항공산업에 종사한다는 자부심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숨을 쉰다. 항공산업은 기종 개발에 막대한 자금과 10년여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정부의 정책 뒷받침이 필수적. 그러나 T-50 개발이 이뤄진 뒤 차기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연기되면서 한국항공우주는 지속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 미국의 F-15 및 프랑스의 '라팔' 등이 경합하고 정치권에서도 갑론을박을 거듭하느라 개발착수가 3∼4년 늦어진 상태다. 육군 차세대 헬기사업(KMH),해상 초계기(P3) 사업들도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정책 결정이 늦어지고 정치권의 공방으로 예산도 지원받지 못해서다. 이에 따라 T-50을 개발하느라 최대 8백명까지 늘어났던 한국항공우주의 엔지니어들은 긴축경영 방침에 내몰려 올해 3백명대로 줄었다. 내년엔 또 다시 1백여명을 감축할 처지에 놓였다. 생산인력들은 꾸준한 생산에 나서고 있지만 고급두뇌인 개발인력들은 최소한 유지에 필요한 인력을 제외한 대부분이 '군살빼기'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김형준 T-50체계종합팀장은 "지난 80년대 초 미국으로부터 엔진을 하청받아 생산을 시작한지 25년 만에 항공기를 독자설계·개발할 수 있는 기술수준까지 올라섰다"고 말했다. 차세대 전투기로 선정된 F-15K 개발을 본격화할 경우 동체인 티타늄 가공기술과 현재 50∼60% 수준인 항공전자·비행제어 부문 기술력도 1백% 국산화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국항공우주는 세계 28개국을 대상으로 2012년까지 KT-1 2백대,2035년까지 T-50 8백대를 수출해 세계 훈련기 시장을 25∼30%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는 2010년까지는 현재 7억∼8억달러인 매출규모를 30억달러로 높여 세계 50위권에서 글로벌 톱10에 진입하겠다는 야심찬 계획. 그러나 이 같은 계획도 정부정책 결정이 늦어지면서 표류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한 이공계 출신 관계자는 "사업의 연속성이 단절될 경우 T-50 개발 경험이 축적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사천=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