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이후 과반 여당으로 변모한 열린우리당이 17대 국회의 운영과 직결되는 당의 정체성 확립문제를 놓고 암중모색에 들어간듯한 분위기다. `친노개혁파'의 유시민(柳時敏) 의원은 19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정체성에 관한 질문에 "다그치지 말라"며 언급을 자제했다. 불과 2주전 문성근(文盛槿) 국민참여운동본부장과 명계남(明桂南) 전 노사모 회장의 분화론 발언으로 인한 파문 때에도 "총선 후 노선경쟁을 하겠다"고 했던 것과달라진 톤이다. 당을 둘러싼 친노그룹에서도 신중한 기류가 감지된다. 한 관계자는 정간법 개정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우선 민생을 챙겨 국민의 교감을 얻고 우리 스스로 정쟁적요소를 제어할 수 있을 때 다뤄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17일 "당장 부딪혀서 소리가 나는 것 보다 국민적, 여야간 공감대가있는 부분을 처리하는 것이 수순에 맞다"고 말한 정동영(鄭東泳) 의장의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친노그룹의 자세가 향후 노선투쟁에 대비한 탐색전인지, 아니면 정 의장 등 중도 성향의 당권파가 지향하는 민생노선에 대해 일단 협조 메시지를 던진 것인지는현재로선 가늠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여권에서는 김부겸(金富謙) 의원 등 재선 소장파 그룹이 공공연히 "초선의원들의 군기를 잡겠다"고 밝히는 등 이념적 분화에 따른 분란 가능성을 경계하는목소리가 비등한 상태다. 그러나 친노그룹의 현실적 목표가 특정 이념의 실현이라기 보다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추구하는 상식과 원칙에 입각한 사회 구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생회복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여당이 갖는 책임감과 민주노동당과의 차별화 필요성을 고려해볼 때 현실에 바탕을 둔 개혁적 실용주의가 향후 우리당이 지향하는 정체성의 본질이 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많다. 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도 이날 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와 총선 후 첫 당.정협의에서 "단기적 경제회생 요구와 장기적인 경제개혁 요구가 상충되는 것이 우리를 어렵게 한다"며 "전략적인 원칙을 지키면서 단기적으로 제기되는 많은 심각한 문제에 대해 효과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다수인 재야.운동권 그룹을 대표하는 그의 언급은 진보진영의 강력한 요구인 재벌개혁 방향에 대해 점진적 접근이란 중도적 노선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지난 2월 노 대통령이 자유총연맹측과 오찬에서 한 발언은 시사하는바가 크다.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개혁방향은 합리주의로, 모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요소를 청산하고 합리적인 룰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라며 "대통령으로서 실용주의 노선을 중심에 놓고 개혁적 합리주의를 실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친노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당의 정체성은 이념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찾아야한다"며 "민노당과는 정책 사안별로 공조하겠지만 유명무실화된 국가보안법을 손대서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향후 당권경쟁은 정체성 개념을 배제한 가운데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원내대표의 양대 계파와 그들 사이의 공간에서 친노세력이 원내대표 경선 등 역학구도 변화의 분수령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양상으로 진행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