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이상한 한ㆍ미 IT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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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이상한 게임이다.
한국과 미국 간에 휴대전화 무선 인터넷 플랫폼이라는 것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갈등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시장에서 기업들 사이의 협력이나 경쟁으로 해결돼야 할 일이 정부와 정부의 갈등 양상을 띠게 된 것도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고,해법으로 한·미 공존의 방안이라며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시장의 합리적 선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휴대전화 무선 인터넷 플랫폼이 PC에서 윈도 운영체제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점만으로도 기술적 가치는 미뤄 짐작할 만하다.
끊임없는 휴대전화의 진화를 생각하면 그 경제적 가치 또한 충분히 그러하다.
어쨌든 한국에서 '위피'라는 이름의 무선 인터넷 플랫폼 표준화가 시작되자마자 미국의 시비는 시작됐다.
이로 인해 정부의 단일 표준화 방침은 일단 연기된 상황이다.
올해 들어서도 이 문제는 한·미 정례 통상현안 점검회의에서 제기됐고 미 무역대표부(USTR)가 의회에 제출한 연례 통상보고서에서도 언급됐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났을 때도 어김없이 거론됐다.
얼마 전 USTR는 '통신분야 통상협정 이행점검 보고서'에서 "한국의 무선 인터넷 플랫폼 단일 표준화 방침이 미국 통신업계의 한국 시장 접근을 제약할 우려가 있다"며 한국을 기술표준 분야의 '주요 우려대상국(key countries of concern)' 중 하나로 분류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가 말하는 '미국 통신업계'가 바로 퀄컴사를 의미한다는 것쯤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퀄컴사가 개발한 '브루'라는 이름의 무선 인터넷 플랫폼의 한국 시장 진입을 미국 정부는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집요한 공세 탓일까.
최근 '위피'와 '브루'를 휴대전화에 동시에 탑재하자는 얘기도 있는 모양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위피' 위에는 '브루'를 얹을 수 없지만 '브루' 위에는 '위피'를 얹을 수 있다는 데서 나온 발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굳이 그런 플랫폼을 선택할 이유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래서인지 정부가 나서서 일부 이동통신사에 그렇게 해주길 주문한다는 소문도 돈다.
이쯤 되면 정부가 왜 단일 표준화를 들고 나왔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콘텐츠 개발자의 중복 투자를 막고,이용자의 편의를 도모하자는 당초 취지와도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플랫폼 간 호환성 문제는 사실 단일 표준화를 통해 강제할 수도 있지만 시장에서 어느 한 쪽이 이겨서 해결되기도 한다.
정부 입장에서 과연 시장의 경쟁을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단일 표준화 추진이 시급했고,또 정당한 절차를 밟았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밀고 나가야 옳다.
하지만 진행되는 양상을 보면 정부가 나서지 않은 것만 못한 꼴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단일 표준화 추진 배경에는 다른 정책적 의도도 있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 중에는 이동통신 시장에서 가입자 쏠림 현상을 막겠다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동통신 시장 쏠림이 그렇게 해서 막아질 일인지는 정말 의문이다.
우리의 무선인터넷 플랫폼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것만 해도 그렇다.
그런 목표를 세웠다면 세계적인 IT 테스트베드라고 정부 스스로 자부하는 국내 시장에서 먼저 기꺼이 경쟁을 붙여 볼 만도 하다.
이런 저런 점을 생각하면 차라리 시장의 선택에 맡겨 놓는 것이 훨 나을 뻔했다.
퀄컴이 로비 상대를 찾는다면 그것은 미국 정부도,한국 정부도 아닌 바로 국내 기업들이어야 지극히 정상이다.
한국 정부가 직접적으로 퀄컴을 상대할 이유도 전혀 없다.
그걸 원한다면 정부의 표준정책 스탠스가 분명해야 한다.
외국 IT 기업들의 연구개발센터를 유치하고,동북아 IT 허브로 가겠다고 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