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역 앞 야에스 거리는 야에스 서점으로 더욱 유명하다. 이 서점 입구에서부터 5층까지 신간코너와 베스트셀러 매장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쌓여 있는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도, 아침형 인간의 히로시도 아니다. 니하라 히로아키라는 무명의 필자가 쓴 '일본의 우수기업연구'라는 책이 불황의 출판계를 깨우고 있다. 니하라씨는 일본 경제산업성의 현역 정보경제과장. '미국식 경영이 아니라 일본식 경영이 결국은 이겼다'며 일본 기업의 부활을 노래하는 책이다. 저자는 일본식 경영의 강점을 증언하기 위해 1백개 우량기업에 대한 실증분석을 실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며칠씩 머리를 감지 않은 것 같은 모습에 근시가 심해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쓴 니하라씨와 황궁이 건너다 보이는 데이코쿠 호텔에서 조찬을 같이했다. 히죽히죽 웃을 때마다 머리 속에서 고성능 컴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지난 85년 이후 최근까지 경영실적이 우수한 기업 1백개를 추려 귀납적 방법으로 공통분모를 찾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알 만하다. 85년이라면 뉴욕 플라자 합의를 통해 그 지독했던 엔고(高)가 시작됐던 시기다. 당시 달러당 2백50엔을 웃돌던 것이 지금은 달러당 1백엔을 들락거린다. 저자의 기획부터가 노림수를 안고 있다. 미국이 일본을 죽이려고 했던 바로 그 시기를 분석의 기점으로 삼는다는 것 아닌가. "그랬더니…?" "역시 미국식 경영과 기업실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이 밝혀졌습니다." "미국식 경영 구조라면?" "이사회가 기업지배구조의 핵심이죠. 자본시장을 통한 감시구조도 그렇고 실적이 나빠지면 합병부터 하고 보는 것이나, 철저한 성과주의도 미국식 경영의 특징이라고 봐야죠." 오히려 일본적인 기업들,예컨대 경영자와 종업원이 기업문화를 공유하며 증권시장 등 외부의 감시구조가 아니라 내부의 통일성을 더욱 중요시하는 그런 기업들이 우수기업이더라는 논리다. 지난 10여년 동안 국제사회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했던 '낡은 일본식 경영'은 이렇게 복권되고 있었다. 세계화 바람를 타고, 특히나 90년대의 세계 금융위기 과정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로 강요되고 있는 미국식 경영에 대해 "'노(NO)!'라고 말하겠다"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아닌 일본의 관료가 주도하고 있다. 또 그의 생각이 선풍적인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겨우 양보한 것이라면 "기업 내부에서 주류로 성장한 사람이 아니라 비주류, 즉 변방과 외곽에서 고생하면서 성장한 경영자들의 성과가 좋다"는 정도다. 경영자는 회사의 가장이며 모기업은 계열사들의 어버이라는 수직 통합구조의 화려한 부활이기도 했다. 도요타자동차의 도쿄 본사에서 만난 이시자카 요시오 부사장은 그것을 아예 "일본기업의 DNA, 도요타의 DNA"로 규정한다. 그것이 진정 일본의 DNA라면 돌연변이가 아니고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또 바꿀 이유가 없다는 말도 된다. 세계 최고기업의 이 잘생긴 부사장은 도요타의 DNA코드를 이렇게 요약했다. '해고하지 않는다. 임금을 올리지 않는다(물론 그는 '안정'이라고 표현했다). 생산성 향상에 주력한다.' 그는 "도요타는 제조업입니다"고 덧붙였다.(그래서 어떻다는 말이지…) "대규모 제조업이기 때문에 고용의 안정이 생산성의 관건입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긴 설명이 필요없다. 물론 유전자의 변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쓰시타를 회생시킨 나카무라 회장은 경영의 신으로까지 불렸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철저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그것도 일본적인 부인일 뿐이다. 한국 기자의 눈에는 "글쎄, 그 정도를 놓고 호들갑을 떠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유전자는 오히려 자기복제되고 있고 약간의 변이를 통해 더 강해지고 있다. 정규재 < 부국장 jkj@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