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에서 북쪽으로 따라가다 보면 서면 자등리에 '한국가속기 및 플라즈마연구협회 물리기술연구소'라는 커다란 녹색 표지판이 나온다.


북한을 코앞에 두고 있는 산골 지방에 들어선 첨단 과학기술연구소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연구소 입구에 들어서면 허름한 가건물들이 나온다.


'연구소' 하면 떠오르는 깔끔하고 품위있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칠판과 책상 대신 기름 묻은 연구장비와 도면으로 가득차 있는 이 연구소에서는 '제4의 물질'로 통하는 플라즈마 연구가 한창이다.


플라즈마란 기체가 초고온 상태에서 전자와 핵으로 분리돼 운동하는 상태로,핵융합로 개발 등에 응용될 수 있다.


소장인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정기형 명예교수(66).


겉모습만 보면 여느 농촌의 할아버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의 연구실은 폐교 맞은 편의 수련원을 개조해 만들어졌다.


내부는 방한이 제대로 안돼 써늘하다.


하지만 도서관,세미나실,공구 진열실,개인연구실 등 구색은 다 갖추고 있다.


이 연구소는 지난 91년 서울대 안에 설립됐다.


그러나 연구공간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정 소장은 2001년 연구소를 철원으로 옮겼다.


당시 철원군청은 연구소 유치에 적극 나섰다.


폐교였던 초등학교 분교와 수련원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전력도 무료로 사용토록 했다.


정 소장은 공동연구 기업의 지원을 받아 폐교와 수련원 건물을 개조하고 새로운 연구실도 지었다.


숙소도 따로 마련했다.


서울에 있던 12명의 연구원이 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 소장은 지난해 8월 정년 퇴직한 후 이 곳에 상주하면서 플라즈마 연구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퇴임 후 학교에 남아있는 것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요."


그는 공기 맑고 자유로우며 땅 넓은 철원에서 기업의 지원을 받으면서 연구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정 소장은 이 곳에서 중요한 연구성과들을 잇달아 내놨다.


양성자 가속기의 핵심 부품인 고출력 고주파원(Klystron) 장치 제작이 그 대표적 사례다.


4억원을 들여 개발한 고출력 고주파원 장치는 현재 한국원자력연구소로 옮겨져 성능시험을 받고 있다.


정 소장은 또 플라즈마를 이용한 암반 발파기술도 개발했다.


소음과 진동이 거의 없는 획기적인 기술로 유럽에서 특허를 받았다.


연구소는 플라즈마 빔을 이용한 농산물 멸균시스템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정 소장은 "학자도 지식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며 "철원에서 플라즈마 연구를 하며 일생을 바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