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외환위기는 기업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건축자재 업체인 (주)벽산도 이 해 75억원, 98년 3백억원의 적자를 봤다.


김재우 사장은 위기의 한복판이던 98년 벽산의 사령탑을 맡았다.


그를 영입하며 대주주가 했던 유일한 당부는 "회사를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경쟁사와 벌이는 시장점유율 경쟁을 당장 중단하라."


김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임직원들을 당혹케 했다.


원자재 가격이 치솟는 상황에서 영업력을 강화해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는 현실을 전혀 모르는 듯한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그러나 단호했다.


그는 사원들에게 "과당경쟁에서 이겨야 남는 것이 없다"고 설명하고 "남보다 먼저 소비자 욕구를 찾아낼 것"을 주문했다.


삶의 터전이라고 믿어 왔던 석고보드 공장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한 김 사장은 경쟁자 없는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섰다.


"최고의 경영은 부전승(不戰勝)을 하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김 사장은 우선 난수표 같았던 수백개의 제품군을 내화 단열 방음 등 3가지 중심으로 단순화시켰다.


대신 건축자재 판매업이 아닌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 공간 제공'을 벽산의 사명으로 삼았다.


이 전략에 따라 벽산은 건축자재뿐만 아니라 실제 쾌적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서비스와 시스템을 패키지화해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를 토대로 벽산은 2002년 10월 워크아웃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1백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는 알짜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가치혁신(Value Innovation)론의 핵심은 경쟁자와 경쟁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찾는 것이다.


새로운 시장은 무(無)경쟁 시장이므로 패배자가 될 위험도 없고 이익을 경쟁자와 나눠 가져야 할 필요도 없다.


위기를 이겨내고 우량 기업으로 우뚝 선 벽산이 걸어온 길이 바로 가치혁신의 여정이었다.


김 사장은 "최근의 경쟁은 경쟁자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영역 없는 경쟁(cross competition)"이라며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경쟁자가 튀어나오는 만큼 전후좌우를 잘 살펴 싸움이 적은 곳을 찾아가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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