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다행입니다. 이제야 수출길이 열렸습니다. 현지 진출 기업 모두 곧 대대적인 FTA 기념 세일에 나서 실추된 한국의 이미지를 되살린다는 각오입니다." 국회가 네 차례의 시도 끝에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처리한 16일 칠레 현지의 한국 기업인들은 고국에서 날아든 낭보에 새벽잠을 설치며 한·일 월드컵 때와 같은 환호 분위기에 빠졌다. 칠레 현지시각으론 한국보다 13시간 늦은 16일 새벽 2시,"이번에도 안되면 어떻게 하나" 하며 마음을 졸이던 이들은 소식을 듣고 "이제야 1백m 달리기 출발선에 다른 나라 기업들과 나란히 설 수 있게 됐다"며 안도감을 나타냈다. 특히 브랜드 인지도와 품질로 가격 경쟁력 열세를 극복해야 했던 가전업체들은 "브라질 멕시코 등 칠레와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압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환영했다. 구자경 KOTRA 산티아고 무역관장은 "6%인 관세에 다시 19%의 부가가치세가 붙어 그동안 우리 상품이 많이 고전해 왔다"며 "외국제품과 동등한 가격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됐다"고 다행스러워 했다. 그는 "칠레의 상품구매단을 한국에 많이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며 "칠레 정부의 조달시장 진출 확대를 위해 이곳에 물류기지를 세우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김원식 대우일렉트로닉스 칠레 법인장은 "국회 비준이 계속 지연되면서 10여년간 쌓아 놓은 유통망을 지키는데 혼신의 노력을 쏟았다"며 "TV와 비디오 등 주력 제품은 관세가 철폐돼 가격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법인장은 "그동안 다소나마 실망감을 내비쳤던 이곳 바이어들이 앞으로는 우리 제품을 더욱 선호하게 될 것"이라며 "FTA 비준 기념으로 일부 제품을 싸게 파는 프로모션을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지에서 3국간 거래에 주력했던 한국 종합상사들도 우리 상품을 더 많이 수입해 팔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며 안도감을 나타냈다. 맹관호 현대종합상사 산티아고 지사장은 "이번에도 비준이 무산됐다면 시장을 완전히 잃을 위기에 놓였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맹 지사장은 "30여개국과 FTA를 맺고 있는 칠레에선 각국의 제품이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비FTA국 제품엔 일괄적으로 6% 수입관세가 적용되기 때문에 버텨내기 어려웠던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한ㆍ칠레 FTA 비준은 당장 맹 지사장이 근무하는 현대종합상사에도 희소식이다. 한국에서 가져다 칠레에서 판매하는 건설중장비와 엘리베이터가 즉시 관세가 철폐되는 품목에 포함돼 있어서다. 맹 지사장은 "무엇보다 한국 국회가 FTA 통과를 계속 연기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아냥거리던 현지인들에게 할 말이 생겨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ㆍ칠레 FTA 비준안 통과는 브라질 멕시코 등 남미의 중심 시장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KOTRA 무역관장들은 전했다. 한종운 KOTRA 상파울루 무역관장은 "뒤늦게나마 한국이 통상중심국가로 가려는 의지를 보여주게 돼 다행"이라며 "FTA의 첫 관문인 한ㆍ칠레 FTA가 발효되는 만큼 멕시코 브라질 등과의 FTA 추진에 조속히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관장은 "멕시코는 FTA 국가 제품에 대해 관세를 인하하는데 그치지 않고 FTA를 맺고 있지 않는 나라 제품에 대해 관세를 대폭 인상하고 있다"며 "1백억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전력 플랜트 등 멕시코 정부 조달시장 참여를 위해서라도 멕시코와의 FTA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