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훼이저우 시내에 위치한 TCL그룹 본사.


낡은 건물 외관을 보고 10여평 남짓한 1층 현관에 들어서면 프랑스 톰슨의 TV부문을 합병, 세계 1위 TV업체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심찬 기업을 제대로 찾아온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하지만 현관 벽에 씌여진 장문의 글에는 세계 일류기업이 되겠다는 TCL의 강한 의지가 물씬 배어 있다.


지난 2002년 가을 리동성(李東生) TCL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중국기업과 세계 일류기업의 경쟁은 경량급과 헤비급 복서가 벌이는 게임"이라며 "최고의 기업으로 발돋움해야 미래의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TCL은 '헤비급 복서'가 되기 위해 조우추취(走出去, 해외진출)를 그 생존 전략으로 택했다.


세계 기업들과 겨룰 수 있는 '몸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올 상반기중 톰슨과 'TCL-톰슨전자'를 출범시키기로 한 게 그것이다.


합병사 본부는 홍콩에 위치하고 TCL이 67%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TCL이 톰슨의 TV 사업부문을 사실상 인수하는 것이다.


TCL은 이를 통해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각각 1,2위 TV 브랜드인 RCA, 3만4천여건의 TV관련 특허와 연간 수억 달러에 이르는 기술 로열티 등 톰슨이 1백12년간 쌓아온 '값 비싼 자산'을 단숨에 챙기는 것이다.


TCL-톰슨전자가 출범하면 연간 TV 생산대수가 1천8백만대로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1위가 된다.


리 회장은 "베트남과 같은 개도국에서는 TCL 브랜드로 공략하지만 선진국에서는 현지 브랜드를 인수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는 '세계경영'을 성장의 축으로 삼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 기업이다.


해외 브랜드 사냥 보다는 글로벌 연구망 구축을 통해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화웨이는 아랍에미리트에서 보내온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아랍에미리트의 유일한 통신서비스업체 'Etisalat'가 화웨이의 3세대 이동통신 장비를 사용, 상용서비스에 들어갔다고 발표한 것이다.


앞서 1주일전에는 홍콩의 이동통신사인 선데이에 3세대 이통장비 1억달러어치를 공급키로 계약을 맺었다.


두 곳 모두 유럽형 WCDMA 장비를 쓴다.


본고장 출신인 프랑스의 알카텔, 독일 지멘스 등을 제치고 화웨이가 공급권을 따냈다.


"국제 첨단 통신장비 시장에 웨이크 업 콜(wake-up call)"(시장조사기관 가트너 제이슨 채프먼 연구원)이 울린 것이다.


지난 96년 홍콩을 시작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한 화웨이는 7년여만에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다국적 기업의 경쟁자로 부상했다.


화웨이의 고정 전화 및 이통장비를 사용하는 곳은 미국 독일 러시아 등 전세계 40여개국에 이른다.


화웨이는 이미 성장모멘텀을 해외시장에서 얻기 시작했다.


"해외 매출이 지난해 전년대비 90% 증가,10억달러를 넘어섰다. 올해엔 최고 2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쉬즈진 부사장).


화웨이는 특히 지난해 쓰리콤과 합작사를 세우는 등 NEC 마쓰시타 인피니온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 일류기업들과 합작사 및 공동실험실 운영 등을 통해 글로벌 기술네트워크도 구축했다.


'세계 경영'은 하이얼 SVA 롄상 등 여타 중국 업계에서도 '생존과 성장의 키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5백10개사가 전년에 비해 44% 증가한 20억9천만달러를 해외에 투자했다.


"2020년이면 중국이 글로벌 브랜드의 주요 원천이 될 것"(프랜시스 맥과이어 국제브랜드연맹 부회장)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기업의 '조우추취'는 세계 경제의 부가가치 사슬을 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저임 노동력 제공처에 그쳤던 중국이 브랜드 세계화를 통해 부가가치 사슬의 맨꼭대기에까지 오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니나 삼성전자처럼 톱 브랜드를 가진 글로벌기업들은 중국 경쟁자들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지켜봐야 한다"(매킨지컨설팅 폴 가오 컨설턴트)는 지적이 설득력있게 들린다.



선전ㆍ훼이저우=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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