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 역할에는 자신있었지만 제가 대표이사 감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뜻밖에도 최고 책임자가 되고 보니 잘해낼 수 있을지 겁이 나네요." 원숭이띠인 심재원 동강메디칼시스템(구 동강무역) 대표이사(전무·48)는 여사원으로 입사한 지 25년만인 올초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동강메디칼시스템은 1백7명의 종업원이 지난해 3백억원의 매출을 올린 중견 의료기기 제조 및 수입업체. 여자하고는 겸상도 안한다는 경상도 출신의 이창규 회장은 "심 대표의 경력과 전문지식은 이 분야 최고"라며 남자를 제치고 사장으로 발탁한 배경을 설명했다. 심 대표가 이 회사에 첫 출근한 건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하던 1979년. "그때만 해도 대졸 여직원이 없던 때라 선배들이 커피 심부름을 시켜야 할지,다른 일을 시켜야 할지 몰라 하더군요.하지만 밖에서 뛰어야 할 영업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행정업무 처리하느라 못 나가는 걸 보고 그들의 일을 해결해 주기 시작했더니 일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심 대표는 전공 관련 첨단장비에 대해 이해가 빨라 영업사원들을 돕는 등 10년 이상 영업현장을 누비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회사에 기여한 가장 큰 공을 꼽으라면 회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는 점이다. "개인회사는 자칫 오너가 독선이나 오류로 흐를 수 있는데,제가 회장님하고 끊임없이 싸우면서 다른 생각을 제시한 게 회사 발전에 보탬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심 대표는 자신의 커리어 중 대리 승진 때를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회고했다. "여자이기 때문에 승진에서 누락하는 건 불공평하다고 상사에게 어필해 남자 직원들과 똑같이 승진했습니다.그런데 서로 '미스 심'을 도와주려고 하던 남자 직원들이 갑자기 경쟁상대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남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심 대표는 최고경영자가 된 후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의 부족,편견 등으로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도 있는 개연성을 가장 경계했다. 회사의 새 비전을 설정하기 위해 태스크포스팀을 만들고 직원들에게 회사를 같이 키워가자고 강조한다. 바쁜 일정 속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올해 또다시 박사학위에도 도전하는 그는 "열심히 일해서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