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이란게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진득한 성격이었길래 다행이었다. 김태희씨(34·가명)는 아로마 피부관리실을 운영했던 2년간의 기억을 떠올리기조차 싫어했다. "고객과의 친분 때문에 정상요금을 받기가 힘들었어요.눈을 질끈 감고 강단있게 사업을 했어야 했는데….고객을 휘어잡는 화술과 도전적인 마인드도 부족했죠.좋은 제품과 기기로 서비스해야 한다는 자존심은 왜 그렇게 강했는지 모르겠어요." 경남 창원에서 9년동안 직장생활을 한 김씨는 전문 직업인이 되기위해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뷰티관련 일이 적성에 맞아 보였다. 미용학원 문을 두드렸다. 교육을 받은뒤 곧바로 대형 피부관리숍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사업 기회는 피부관리 재료인 '아로마'에 대한 교육을 받던 중에 우연히 찾아왔다. 아로마제품 영업사원으로부터 마산 시내에 좋은 피부관리점 자리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매장규모가 좀 컸다. 마침 같은 피부관리숍에서 일한 적이 있는 언니와 연락이 닿았다. 동업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얘기가 이구동성으로 튀어나왔다. 건물 3층 입구에는 언니가 발 관리실을 열고 뒤편의 8평짜리 점포에는 김씨의 아로마 피부관리실이 들어섰다. 물을 쓸 일이 많아 주방이 있는 뒤편 자리를 원했던 것. 보증금은 따로 냈지만 월세와 관리비,간판제작,인테리어,물품구입비,홍보비는 반반씩 부담했다. 두사람 다 만족스런 독특한 형태의 동업이었다. 2001년 6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바로 이 동업에서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발 관리를 하는 언니 가게는 손님이 적잖게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내 가게에는 손님이 없어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시너지효과를 낼 줄 알고 점포자리가 후미진 것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실제론 뒤편까지 손님이 들지 않았던 거죠." 손님을 많이 끌 작정으로 '할인'서비스를 자주 해줘야 했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었다. 할인서비스가 일반화돼버린 것. 정상가격을 받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원가를 낮추기 위해 싼 제품을 쓰자니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월매출 3백만원은 올려야 손해를 안보는데 1백50만원에 그치는 달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적자가 매달 50만∼1백만원씩 불어났다. "인건비도 안나오게 장사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순진했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은행 마이너스 대출을 항상 써야 했고 붓고 있던 적금과 보험을 하나둘 깨야 했다. 이러다간 안되겠다 싶어 할인티켓을 만들어 근처를 돌며 홍보를 시작했다. 그러나 성수기인 가을 겨울이 지나고 가게를 낸지 1년이 지나도 손님은 늘지 않았다. 하루에 6명은 찾아와야 정상운영을 할 수 있는 데 개시도 못하고 퇴근한 날도 있었다. 그러던 중 언니가 발 관리에 피부관리 서비스까지 하겠다고 나섰다. 김씨도 발 관리를 함께 하는 식으로 합의했다. 피부관리 서비스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니 가게 자리가 더 좋아 피부관리 받을 손님까지 빼앗겨 버렸다. 제살깎는 선택이었다. 결국 서로 라이벌이 돼 경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씨는 "같은 업종에서 동업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한명이 잘되면 다른 한명은 반드시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다시 1년이 흘렀고 건물주와 잦은 마찰을 빚었던 언니가 가게를 비웠다. 그 자리로 옮기면 뭔가 되겠다 싶었지만 남편이 "재기하기엔 이미 늦었다"고 만류했다. 김씨는 결국 지난해 5월에 가게를 정리했다. 가게에서 쓰던 미용기기는 모 업체에 팔았는데 부도가 나는 바람에 대금도 못받았다. 창업자금까지 모두 2천4백만원을 날렸다. 다시 화장품 회사에 취업한 김씨는 "아니다 싶을때 과감하게 정리하는 결단도 필요하다"고 예비창업자들에게 조언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