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농민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몸사리기'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이 8일 좌절되자 정부 관계자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 저녁인 7일 오후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은행회관에 경제부처 기획관리실장들을 모아놓고 "국회의원들을 1대1로 전담해 철저히 설득하라"고 독려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8일 오전 국회를 방문,각 당 대표들을 만나는 등 총력전을 폈는데도 결국 무위로 끝났기 때문이다. 통상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FTA 협정을 맺어놓고 국회 비준을 받지 못해 1년 이상 발효되지 못한 전례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칠레 외에 일본 멕시코 싱가포르 등과도 FTA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데 어느 나라가 정치 논리에 통상정책이 좌지우지되는 한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으려 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도 "무역으로 먹고 사는 통상국가로서 망신스러운 일"이라며 "칠레와의 FTA가 지연되면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남미 시장을 일본 등 경쟁국에 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농림부 관계자마저 "관심이 '표밭'에 가 있는 국회의원들의 근시안적 행태가 변하지 않는 한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FTA 피해농가에 대한) 추가적인 정부 지원책은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날 국회에서 찬반 토론이 끝났고 무기명 비밀투표로 비준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만큼 다음달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것이라는 희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오늘 비준안이 처리되지 않았으나 많은 국회의원들이 FTA협정 비준의 필요성에 공감했다"며 "농촌 출신의 국회의원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모습이 언론 등에 충분히 공개됐기 때문에 내달 임시국회에서는 통과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업계에서도 이날 FTA 표결이 또다시 무산되자 "앞으로 칠레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 시장은 물론 세계 주요시장에서 수출하기가 어렵게 됐다"며 농민단체 등 특정 집단의 '표심(票心)'에 휘둘린 국회의원들을 맹비난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한·칠레 FTA는 단순히 칠레 시장에 대한 수출판로를 확대하는 차원을 넘어 일본 등 더 큰 시장과 체결이 불가피한 FTA에 악영향을 미치게 됐다"며 "최근 수출 호조와 내수 침체의 양극화 현상에서 보듯 수출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 막무가내식 FTA 반대론이 통용되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