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꽉 막혀 버렸다. 두 팔을 벌리면 닿을 너비의 협곡길 양 옆은 울룩불룩 까마득히 치솟은 절벽이다. 높이가 1백m는 족히 돼 보인다. 그 끝으로 실처럼 가늘게 이어지던 하늘이 사라졌다. 앞에는 또 다른 절벽이 걸어 잠근 대문처럼 버티고 있다. 꺾여 이어졌던 뒷길도 어느새 닫혀 버렸다. 길이 여기서 끝나는 것일까. 뒤따르던 바람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달음박질해 나갔다. 앞이 트였다는 증거다. 한걸음 떼면 닫히고, 두걸음 옮기면 열리는 길은 그렇게 계속됐다. 길은 바위절벽의 미묘한 색 변화로 내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시커먼 바위절벽은 연분홍으로 밝아졌다가 한순간 진홍빛으로 물들곤 했다. 절벽 중간의 바위틈새로 뿌리를 내린 키작은 나무, 아주 오랜 옛날 사람들의 숨결이 전해지는 흔적들도 시선을 붙잡았다. 그렇게 1㎞쯤 걸었을까. 길이 목관악기의 울림통 역할을 하는지 멀리서 바람에 실려 온 여성의 고운 노랫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리고 진홍의 빛줄기가 수평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알 카즈네! 페트라 유적의 얼굴격인 알 카즈네가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 환한 모습으로 성큼 다가섰다.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에 아득해진 정신을 수습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본 오아시스가 이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줄 수 있을까. 돌과 모래투성이인 해발 9백50m의 고원 위로 빙 둘러쳐진 산줄기 한복판의 거대한 곰보 바위산. 그 틈새로 난 좁은 협곡길 끝의 알 카즈네는 불가사의 그 자체였다. 누가 이런 곳에 이런 흔적을 남겼을까. 지금의 베두인족으로 추정되는 아랍인 나바태족이 그 주인공이라고 한다. 나바태족은 기원전 6백년께부터 이곳 페트라에 정착했다. "페트라는 원래 에돔족의 땅이었어요. 성경 속 이삭의 장남인 에서의 무리가 살았던 터전이지요. 그런데 바벨탑을 세운 신바빌로니아왕국의 네부카드네자르2세가 이스라엘 유다왕국에 침입, 사람들을 바빌론으로 잡아갔어요. 바빌론유수란 말이 있잖아요. 에돔족은 이때 유다왕국으로 이주했고, 페트라에는 베두인족의 선조로 추정되는 나바태족이 들어온거죠."(가이드 손종희) 나바태족은 무역을 하며 자체 동전을 유통시킬 만큼 번성했다. 페트라는 이 시대의 무역 거점도시였다. 실크로드, 왕의 대로를 포함해 동서와 남북을 잇는 교역로가 페트라를 통과했다. 아기예수를 찾은 동방박사들이 유향과 금, 몰약을 가져온 곳이란 설도 있을 정도다. 한창 때는 인구 5만명을 헤아렸다고 한다. 페트라는 그러나 기원후 2세기께 이 일대 아랍지역을 장악했던 로마가 교역로를 다른 곳으로 빼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상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로마시민으로 흡수됐고, 탈주한 노예들이 그 공백을 메우면서 잊혀진 도시가 돼버렸다. 페트라가 다시 빛을 본 것은 1812년이다. 스위스 탐험가 요한 루드빅 부르크하르트가 발견, 서방에 소개하면서 1천6백여년의 긴 어둠을 걷어낸 것. 몇 년 전 할리우드 영화 '인디애나 존스-최후의 성전'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졌다. 파라오의 보물이 있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알 카즈네를 비롯 남아 있는 페트라의 유적은 거의 대부분 무덤이다. 사암 절벽을 부조하듯 깎아 신전처럼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단순하기 그지 없다. 왕가의 무덤 등 알 카즈네 뒷길로 계속 이어지는 유적도 크기만 다를뿐 외형이 비슷하다. 굵은 기둥이 늘어선 열주로, 3천여명을 수용할수 있는 규모의 원형극장 등 로마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하다. 주거의 흔적은 볼 수 없다. 대규모 지각운동에 의해 집이 터째 사라졌다는 얘기가 있지만, 당시 나바태족의 주거형태가 이동식 천막이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알 카즈네와 함께 페트라의 영화를 보여주는 것은 대사원이다. 대사원은 알 카즈네에서 한참 들어간 곳에 있는 페트라박물관에서도 한시간 이상 절벽길을 올라야 만날수 있다. 8개의 2층 기둥으로 되어 있는 대사원은 폭 40m에, 입구 높이만 해도 8m를 넘는 규모다. 앞쪽으로 천연의 원형극장 형태 공터가 있다. 그 끝에 둘러쳐진 바위산에 오른다. 그랜드캐니언 보다 깊게 뻗어내린 협곡에 현기증이 인다. 그리고 더욱 붉게 물드는 하늘과 페트라 유적의 전경, 어느새 반짝이는 하얀 별빛이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 < 여행수첩 > 요르단의 정식국명은 요르단 하심왕국이다. 아라비아반도 북서부에 있다. 서쪽으로 이스라엘, 북쪽으로 시리아, 동남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동북쪽으로 이라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수도는 암만. 한반도의 40%인 8.8㎢의 땅에 5백40만명이 살고 있다. 인구의 절반이 암만에 산다. 전국민의 90%가 회교도이며, 40%가 학생이라고 한다. 한국교민은 1백50명 정도. 지중해성 기후와 사막성 기후가 공존한다. 우기인 겨울에는 눈도 내린다. 밤낮의 기온차가 크다. 한국보다 7시간 늦다. 통화단위는 요르단 디나르. 요즘 환율은 1디나르에 미화 1.43달러 안팎. 비자는 입국시 공항에서 받는다. 땅 색깔과 비슷한 돌타일을 붙인 2~3층의 상자모양 집들이 이채롭다. 밀가루에 이스트를 넣지 않고 둥글넓적하게 굽는 빵 홉스와 양고기가 주식이다. 식당에서 내놓는 꽂이 양고기는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으며, 맛도 좋은 편이다. 한식당은 없으며 한국산 중고자동차들이 눈에 많이 띈다. 페트라는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1백50km 정도 떨어져 있다. 페트라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입구에서 대사원까지 말과 당나귀 등을 타고 갈 수 있다. 보통 세구간으로 나눠 돈을 받는데 흥정을 잘해야 한다. 힘이 들더라도 끝까지 걸어 보는 것도 좋겠다. 다만 당나귀 똥을 밟지 않도록 조심한다. 요르단 전체에 모세의 출애급 여정과 관련된 유적이 많아, 성지순례를 겸한 여행길로도 좋겠다. 카타르항공(02-3708-8560)이 지난해 10월부터 인천~도하(카타르) 직항편을 주3회 운항, 요르단 방문길이 수월해졌다. 비행시간은 11시간 정도 걸린다. 도하에서 암만까지 연결편 비행시간은 2시간30분. 사막 4륜구동 지프투어, 나이트 하버 크루즈, 바다낚시 등 다양한 도하 스톱오버 프로그램도 마련해 놓고 있다. 페트라(요르단)=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