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부딪치지 않고 겉으로만 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게 창업의 세계다. 인터넷 등에 창업정보가 넘쳐난다고 하지만 '실전경험'에 비길 수는 없다. 창업을 앞두고 업종이나 입지선정과 같은 사전준비작업을 철저히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창업하고 나면 누구나 준비 소홀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실패할 경우는 더말할 나위가 없다. 박용현씨(31)도 사업 실패후 준비 소홀에 땅을 쳤다. 그는 지난해 4월께 3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무료한 직장생활 등 몇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장사를 하면 좀 더 빨리 돈을 벌 수 있겠지'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박씨는 '돌다리도 두드려본다'는 심정으로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인터넷과 서적을 통해 '장사비법'에 관해 연구를 거듭했다. 직장생활할 때보다 몇배이상 노력했다. 열정을 듬뿍 쏟았지만 1년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지난 10월 가게문을 닫았다. 장기불황에다 상가 건물주의 횡포,상권이동 등 불가항력에 가까운 요인들이 창업 실패의 요인이 됐다. 그러나 박씨가 꼽는 가장 큰 패인은 역시 경험 미숙과 준비 소홀이다. 돌이켜보면 업종 선정에서 폐업신고에 이르기까지 박씨는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난해 4월초.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결심했지만 실제 준비된건 아무 것도 없었다. 창업자금이라곤 몇푼 안되는 퇴직금과 예금통장 잔고가 전부였다.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구에게 동업을 제의했다. '업종선택'을 위한 고민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대출금까지 포함해 동업할 친구와 준비한 자금이 5천여만원 남짓. 이 정도 자금이면 조그만 음식점을 빼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시장조사끝에 '생고기 숯불구이' 음식점을 차리기로 결정했다. '생고기 숯불구이'의 메뉴가 비교적 단순했기 때문. 그러나 이는 섣부른 판단이었다. 좋은 고기를 사는 것에서 부터 핏줄,비계 제거 등 다듬는 일까지 일일이 손질을 해야 했다. 싱싱한 야채를 갖추고 반찬을 준비하는 것도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박씨는 지난 여름 태풍으로 야채 값이 폭등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단골 손님이 "야채좀 더 달라"고 주문할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점포를 구하는데는 1개월 정도가 걸렸다. 서울시내 장사할만한 데는 다 뒤지고 다녔지만 마땅한 데가 없었다. 서울에서 점포 문을 열려면 점포권리금을 포함해 최소한 1억원 이상이 든다는 사실을 깨닫고 발길을 인천으로 돌렸다. 2주 정도 돌아다닌 끝에 인천 남동구 먹자골목에서 30평짜리 가게를 발견했다. 권리금 1천5백만원을 포함한 임대보증금이 3천5백만원. 조금 후미졌지만 먹자골목안에 있는데다 점포임대비용이 적어 덜컥 계약했다. 성급한 점포 계약은 두고두고 골치였다. 나중엔 폐업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음식점을 창업하는 일은 생각만큼 수월치 않았다. 구청의 위생교육을 받아야 하고 세무서에 사업자등록도 해야했다. 카드사에 가맹점 등록도 해야 했다. 인테리어,집기,재료비 등 추가비용으로 1천8백만원이 더 들었다. 인테리어는 일반 고깃집과는 달리 젊은층 사이에 한창 유행하는 일본식 '젠 스타일'로 꾸몄다. 1년6개월 남짓한 짧은 창업기간에도 부침이 있었다. 개업후 처음 6개월간은 매출이 꾸준히 늘었다. 하루 평균매출은 60만원,운 좋은 날은 1백만원까지 치솟았다. 오후 3시부터 새벽 4시까지 밤낮을 바꿔 살았지만 수입은 직장 다닐때보다 훨씬 나았다. 월말에 친구와 한달 매출 정산을 하면 5백만원정도가 박씨 몫으로 떨어졌다. "이래서 장사를 하는구나." 장사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것도 바로 이때다. 잠을 못자도 피곤한 줄 몰랐다. 6개월이 지나자 매출이 내리막길로 돌아섰다. 처음에는 불황탓인 줄만 알았다. 하루 평균 매출이 30만원대로 곤두박질쳤지만 수입이 줄었을뿐 점포 운영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인근 새 먹자골목으로 상권이 옮겨가며 매출은 갈수록 눈에 띄게 줄었다. 의욕이 사라졌다. 창업후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건물 주인이 바뀌면서 월세도 올렸다. 장사도 안되는데 70만원이던 월세가 1백30만원으로 뛰었다. 법적인 해결을 강구했지만 상가임대차보호법도 점포를 세낸 상인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결국 올해 4월께 폐업키로 하고 점포를 복덕방에 내놨다. 불황인데다 점포 월세도 비싸 찾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을 까먹는 날이 6개월간 계속됐다. 지난 10월초 1천5백만원의 권리금을 고스란히 포기하고 점포를 넘겼다. 인테리어에 들어간 비용도 한푼 못 건졌다. 박씨는 현재 정보통신회사에 다니며 제2의 창업을 모색하고 있다. 친구와 함께 3천여만원을 까먹었지만 얻은 것은 그 이상이라고 자위한다. 박씨는 "창업자들은 보통 의욕이 앞서 모든 것을 좋게 보려는 경향이 많다"고 말한다. 그는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모든 요인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신중하게 결정하는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