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국회 상정 후 6개월간 표류하던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26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를 통과함에 따라 정부의 FTA 추진 전략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이 FTA 등 양자(兩者)협상을 통한 지역주의 확대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FTA 짝짓기'의 새로운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농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법안 반대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29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진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한ㆍ칠레 FTA가 최종 확정될 경우 한국은 △공산품 수출증대 △중남미시장 진출거점 마련 △칠레 정부조달시장 참여 △FTA체결 경험 축적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 한국은 칠레에 공산품을 주로 수출하고 칠레에서 원ㆍ부자재를 수입하는 등 양국의 교역 및 산업구조는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양국간 FTA 체결로 한국 상품의 연간 대(對)칠레 수출이 6억6천만달러 늘어나며 수입은 2억6천만달러 증가, 무역수지가 4억달러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칠레를 중남미시장 진출 교두보로 활용하는데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농업분야에서도 당초 우려했던 것 만큼 손실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사과 배 쌀 등 3개 품목은 시장개방 예외 품목으로 합의했으며 고추 마늘 양파 등 양념류와 일부 곡류는 DDA 협상 후 관세철폐 일정을 협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ㆍ칠레 FTA가 공식 발효될 경우 한국은 작년 기준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무역의존도가 66%에 이르는 통상국가로서 단 한 건의 FTA도 발효시키지 못한 'FTA 외톨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버릴 수 있게 된다. 이미 정부는 2005년 협정 타결을 목표로 지난 22일 일본과 FTA 정부간 협상에 나섰으며 산ㆍ관ㆍ학 공동연구를 마친 싱가포르와도 내년중 협상개시를 선언할 방침이다. 정인교 KIEP 선임연구위원은 "국가신인도 하락 우려까지 불러왔던 한ㆍ칠레 FTA 비준안이 최종 통과될 경우 경제적 효과보다도 향후 FTA 추진의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