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불량制 대체할 수단 나와야" ] "획일적인 현행 신용불량자 제도는 연체자에 대해 다양한 평가기준이 적용되는 단계적 규제로 전환돼야 한다." 윤용기 은행연합회 상무는 23일 한국경제신문이 마련한 신용불량자 대책 좌담회에서 "신용불량자 제도는 원칙적으로 없어져야 하지만 일시에 폐지할 경우 도덕적 해이가 더욱 만연할 우려가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한복환 신용회복위원회 사무국장도 "정확한 개인신용평가를 전제로 새로운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며 단계적 규제로의 전환을 지지했다. 참석자들은 또 신용불량자 문제가 이미 금융계 차원이 아닌 사회문제로 등장한 만큼 정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경제신문 임혁 금융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한복환 신용회복위원회 사무국장과 윤용기 은행연합회 상무이사,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석승억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 공동대표가 참석했다. [ 참석자 명단 ] 한복환 < 신용회복위원회 사무국장 > 윤용기 < 은행연합회 상무이사 > 최공필 <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석승억 <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 공동대표 > 임혁 <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금융팀장 (사회) > ----------------------------------------------------------------- 사회 (임혁 팀장) =우선 신용불량자가 최근 1~2년 사이에 크게 늘어난 원인부터 짚어보자. 윤용기 상무 =금융회사들이 지나치게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선 점과 개인채무자들이 자기 상황능력을 초과해서 부채를 늘린 점을 주요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최공필 위원 =정부도 신용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 경기진작에 집중하면서 감독을 소홀히 한 점은 분명한 정책적 실패다. 한복환 국장 =미국은 70년대, 일본은 80년대 후반기에 이미 우리와 유사한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는 그런 사례를 봤으면서도 젊은이들에게 신용관리 교육을 전혀 시키지 못한게 한 원인이다. 석승억 대표 =기업과 정부에도 잘못이 있다. 정부는 소비진작 과정에서 개인여신을 확대했다. 이는 '돈이 돈을 버는' 한국사회에 사는 개인들에게는 일종의 기회였다. 만약 경기가 계속 좋아 변제기회가 왔다면 다행이겠지만 불행히도 경기가 악화돼 변제 기회가 계속 상실된 것이다. 사회 =신용불량자 제도 폐지에 대한 입장은 어떤가. 윤 상무 =신용불량자 제도 폐지는 은행연합회에서도 수차 건의했었다. 문제는 신불자제도를 폐지하면 채무자들이 모든 기록이 없어지는 것으로 오해해 빚을 안 갚으려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언론에서도 신불자 등록제도의 폐지가 아닌 '개편'이나 '개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주길 바란다. 석 대표 =신용불량자라는 단어는 단순히 빚을 갚지 못했다는 의미를 넘어 도덕적, 윤리적 평가 기준으로 작용되는 부정적 의미가 크다. 신불자제도의 폐지는 당연하다. 제도가 폐지된다고 해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윤 상무 =그렇지 않다. 모럴 해저드의 문제는 현장의 목소리를 파악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채무재조정 얘기가 나오면 "내가 왜 돈을 갚느냐. 빨리 신불자로 등록해 달라"는 전화가 민원실에 쇄도한다. 석 대표 =그건 오해다. 왜 신불자가 되길 원하겠나. 채무조정을 받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갚을 길이 막막한데 신불자가 돼야 채무조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채무조정 방법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갚을 의사가 있다는 뜻이다. 한 국장 =용어의 폐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신불자제도를 대체할 수단이 나와야 한다. 대체수단을 만드는 것은 개인신용평가를 정확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또 연체자에 대해 지금까지의 획일적 규제에서 고의성 여부, 금액, 기간 차이에 따라 여러 평가기준을 두는 단계적 규제로 전환돼야 한다. 사회 =채무재조정 제도의 개편 필요성은 없나. 윤 이사 =개별 금융회사 차원에서 대환대출해 줄 사람은 대환대출해 주고, 이자내는게 버거우면 대출기간을 늘려주는 식의 다양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또 다중채무자의 경우, 신용회복위원회의 인력과 조직을 늘리고 개인채무자회생법도 마련해 법원에서 채무조정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인회생법의 경우 미국은 경제적 효용성에 중점을 둬 탕감을 강조하는 편이고 유럽은 도덕적 해이 방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석 대표 =신용카드가 발급될 때 철저한 신용분석이 있었다면 자기책임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홍수에 휩쓸리듯이 카드를 발급받았다. 유럽식의 도덕적 해이 방지를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신불자제도를 폐지하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으며 재기를 지원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소득이 있어야 변제할 수 있다는 얘긴데 지금까지 신불자에 대해 도덕적ㆍ윤리적으로만 비판했지 소득을 창출할 기반은 마련하지 않았다. 한 국장 =개인회생제도가 미국식이 좋으니 유럽식이 좋으니 하지만 어느 나라든 제도가 생긴 배경과 과정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두 가지 시스템이 나온 배경이 혼재돼 있다. 따라서 두 가지 측면 모두 필요하다. 일부는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면서 일부는 탕감해 줘야 한다. 또 사적인 신용회복지원제도와 법원이 결정하는 신용회복제도를 병행해야 한다. 언제 관련법이 개정될지 모르니 만큼 당장은 민간차원에서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사회 =단기대책으로 긴급조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자산관리공사 설치나 신용회복지원채권 발행 등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 위원 =자꾸 기관만 많이 만드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불자가 지금도 양산되는 상황이다. 신규 신불자 양산을 사전에 막는 차원에서 카드사 유동성 위기해결이 시급하다. 한 국장 =만들어 봤자 도덕적 해이만 조장해 금융기관만 어려워진다. 자산관리공사가 개인채권을 관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공기관에서 채권을 회수한다고 하면 채무자들은 적당히 버티려 할 것이다. 개인자산관리공사를 세우면 불법채권추심은 막겠지만, 정부이기에 돈받는데 제약이 있어 정부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법채권추심 근절은 법으로 관리하면 된다. 사회 =신용불량자들의 고용문제에 대한 의견은. 석 대표 =외국인 노동자도 쫓아내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손이 부족한 업체들이 특정 사이트에 '신불자도 괜찮으니 사람 구한다' 식으로 구인활동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한 국장 =신용회복이 확정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신용관리 교육이 계속돼야 하고 일자리도 제공돼야 한다. 경기가 안좋지만 3D 업종을 비롯한 일부업종은 충분히 일자리가 있다. 윤 상무 =신불자의 3D업종 취업은 은행연합회에서 시도한 바 있지만 현실성이 높지 않다. 3D업종도 각종 기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또 신불자가 아닌 사람 중에도 취업이 안된 사람이 많은데 고용주 입장에서는 굳이 신불자를 쓸 이유도 없는게 현실이다. 석 대표 =신불자는 3D업종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잘못이다. 신불자 중에는 사업하다 실패한 사람이나, 박사 등 계층이 다양하다. 급여압류도 문제다. 회사대표를 채무자로 정해 놓고 압류하는데 기업주 입장에선 채무자가 되는게 불만이고, 직장에서의 인식도 좋지 않다. 차라리 소득의 일정부분은 변제하도록 해 급여에서 제하고, 압류는 하지 못하도록 하자. 최 위원 =서민금융기관 등에서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서민금융기관이 위축돼 카드사 현금서비스 의존도가 높아진게 사실이다. 서민금융기관의 역할도 제고돼야 한다. 윤 상무 =과거 저축은행들이 서민들을 끌어안으려고 '묻지마' 대출을 해준 결과가 연체율 50%로 돌아왔다. 현실은 당위로 접근해서는 곤란한 만큼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사회 =신불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경기가 좋아져서 소득이 높아지고 변제능력이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신불자가 많아 내수경기가 죽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외생변수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최 위원 =이런 때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재정적자를 우려해서 발목잡은 부분이 많은데 고용과 직결되는 부분에 대한 투자는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의 투자 마인드가 경색된 상황을 좌시만 한다면 이런 상황이 스스로 개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선심성으로 돈 쓰고 부채 탕감하는 식이 아니라 고용과 직결된 부분, 사회간접자본 등에 대해 투자해야 한다. 정리=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