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2년 수출영업본부 부장으로 LG전자에 들어갔다. LG에 들어가기 전 나는 동오실업에서 수출을 전담했다. 동오실업은 각종 타이머와 법랑주방용품 등을 제조ㆍ판매하는 작은 규모의 회사였지만 이미 70년대 중반 미국에 지사를 개설할 정도로 일찍이 해외 시장에 눈을 돌렸다. 75년 첫 해외출장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캐나다 유럽 중동 동남아 등 18개국 20개 도시를 약 두달에 걸쳐 돌아다녔다. 샘플을 쥐고 지구 한 바퀴를 돈 셈이다. LG전자로 옮긴 뒤 처음에는 전기 제품을 맡았다가 전자렌지가 주력 수출 제품으로 부각되면서 이 부문을 맡게 됐다. 당시 전자렌지의 세계시장은 GE, 월풀, 필립스 등 미국과 유럽의 세계적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어떤 품목이건 후발주자는 괴로운 법. 개발 제조 영업부문이 한 팀이 돼 시장 개척을 위해 정말 열심히 쫓아다녔다. 미국이나 유럽의 상점에 진열된 제품들의 사진을 찍고 기능과 가격, 디자인을 조사했다. 먼 발치에서도 어느 회사 어떤 제품이라는 것을 훤히 꾈 정도였다. 86년의 일이다. 한 밤중에 경유지로 기착한 앵커리지 공항은 추웠다. 지금은 미국 동부까지 직항노선이 개설돼 있지만 당시에는 앵커리지에서 급유를 한 후 다시 떠나곤 했다. 앵커리지는 이미 여러 차례 들른 적이 있기 때문에 게이트 근처의 공항로비 의자에 앉아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바로 앞 창 밖으로 747기의 머리를 마주보면서 탑승시간을 기다렸지만 모자란 잠 때문에 자꾸만 눈꺼풀이 처졌다. 깜빡 졸다가 눈을 뜨고 창 밖의 비행기와 주위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확인한 뒤 다시 졸기를 몇 번 되풀이했다.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도 내일 있을 거래선 미팅을 생각하면서 '그런데 비행기는 왜 안 뜨지?'하고 중얼거렸다. 한참을 꾸벅꾸벅 졸다 눈을 떴을 때였다. "억! 이게 뭐야."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나 혼자 공항 로비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창 밖을 바라보니 내가 타고 온 KAL 비행기는 이륙을 준비하기 위해 서서히 활주로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안 돼!"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마침 옆 게이트의 KAL 직원한테 달려갔다. "비행기를 놓쳤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비행기 안에 두고 내린 서류 가방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비행기를 놓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내일 거래선과의 미팅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무엇보다 큰 걱정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KAL 직원은 마침 무전기를 손에 들고 얘기를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나를 보자 "그 사람이 여기 있다"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기내와 무전기로 손님이 한 사람 탔나 안탔나 옥신각신 하는 중에 내가 나타난 모양이었다. "한 사람이 타지 않았다!" 관제탑에서 연락이 오고 나는 KAL 직원과 함께 별도의 트랩차를 타기 위해 비상구로 나갔다. 늘 공항내 라운지에서만 기다렸던 나로서는 뜻하지 않은 일로 난생 처음 알래스카의 매서운 겨울 찬 바람을 맛보게 됐다. 자동차로 2백~3백m 떨어진 비행기에 접근해서 혼자 계단을 올라가니 비행기 문이 열렸다. '후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비행기에 들어서니 몇 사람이 나를 보고 수군덕댔다. 나는 당당하게 행동하려 했지만 속으로는 창피해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당신이 굉장히 급한 일이 있는 대단한 VIP인줄 알았다." 나중에 사정을 알게 된 옆 사람이 뉴욕에 도착한후 기내를 나오면서 나에게 한 얘기다. 92년 아주지역 담당을 맡았다. "아시아 시장에서 톱 3(Top Three)를 구축하라!" 동남아 시장에서 우리 제품은 약진하고 있었지만 3위권 안에 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우리보다 먼저 진출해 기반을 닦은 일본 업체들과의 경쟁은 힘겨웠다.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무차별한 공략을 펴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 지역별로 선택과 집중을 기본으로 철저한 차별화 전략을 폈다. 우선 인도네시아에서는 인구 밀집지역인 자바섬의 자카르타 지역이 우선 공략 대상이었다. 주력제품은 TV. 거래선들도 우수한 딜러 중심으로 선별하고 각종 마케팅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싱가포르는 소득 수준이 높은 점을 고려해 제품 기능에 초점을 둔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서리 없는 냉장고'가 대표적인 품목이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한물 간 기능이었지만 싱가포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동남아시아에서 펼친 마케팅 전략은 지극히 교과서적인 것이었다.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것을 정석대로 구사했다. 이런 교과서적인 마케팅 전략이 먹혀 들었던 것은 동남아의 대도시는 개발도상국 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유통 구조는 비교적 선진화돼 있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아주지역본부에 거점을 두고 근무한 5년 동안 나는 총 8백80일의 출장일수를 기록했다. 1년에 절반 동안 출장을 다닌 셈이다. 지역별로는 인도네시아 43회, 베트남 31회, 태국 30회, 필리핀 26회, 인도 20회, 호주 및 뉴질랜드 14회였다. 5년간 무려 5백22번이나 비행기에 올랐다. 출장일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현장 중심으로 마케팅 활동을 펼치려고 노력한 결과하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는다. ----------------------------------------------------------------- [ 서기홍 부사장 약력 ] 46년 경남 진주 출생 65년 부산상고 졸업 69년 부산대 무역학과 졸업 72년 동오실업 입사 82년 금성사 전기수출부장 90년 금성사 미국판매법인 법인장 91년 금성사 MWO 수출담당 이사 96년 LG전자 아주지역담당 상무 98년 LG전자 MT OBU장 상무 99년 LG정보통신 해외사업본부장 2000년 LG전자 정보통신사업본부 해외마케팅담당 부사장 ----------------------------------------------------------------- 알림 한국경제신문과 한국무역협회는 절찬리에 연재된 '한국의 수출영웅, 우리는 이렇게 뛰었다' 시리즈에 실린 내용과 신문에 미처 싣지 못한 인물들의 얘기를 상세하게 엮어 곧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수출한국을 위해 불철주야 뛰었던 무역인들의 경험담과 교훈을 생생하게 담을 이 책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