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육십부터'란 말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사오정' '삼팔선'이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니까 50,60대의 정열을 얘기하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50,60대는 '인생의 2막'이 되고 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 인생의 2막을 열어가야 하는 것은 결국 자기 몫이다. 30,40대에 비해 체력과 열정이 떨어지는 5060 세대. 5060 창업은 인생의 2막을 여는 일인 동시에 인생을 마무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옵티마스포츠의 이숭인 사장과 돈가스·우동 전문점을 운영하는 박연대씨는 5060 창업의 성공가능성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들이다. ------------------------------------------------------------------------ 국산 골프채 생산·유통업체인 옵티마스포츠의 이숭인 사장은 올해로 만 63세다. 옵티마스포츠를 설립한 것은 1997년 57세때 일. 오랜 교사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골프채 업체 사장으로 변신했다. 그의 이런 정열은 특유의 '끼'와 '자존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68년 서울 정신여중에서 교편을 잡은 이 사장은 24년간을 평교사로 일했다. "어떻게 하면 보직을 맡지 않을까,담임을 맡지 않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대신 참고서 집필이나 학원 강의,등산 등 취미생활에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특히 중학교 참고서의 바이블인 '완전정복'을 기획한 교사로 유명했다. '옵티마스포츠 사장'이란 현재의 직함이 있도록 한 골프와의 인연은 88년부터 시작됐다. "당시엔 기업으로 따지면 임원급은 돼야 골프를 치던 시절이었죠.교사들중에 골프치는 사람은 눈닦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그러다보니 학교에선 골프친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야 했지요." 그는 92년 52세의 '젊은' 나이에 사표를 던졌다. 후배 교사들을 위해 물러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존심'은 세웠지만 새로 도전키로 했던 한약재 유통업의 비전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막막함이 더해갔다. 결국 5년을 허송세월로 보내야했다. 그런데 기회는 우연한 계기로 찾아왔다. 자동차 부품업체를 운영하는 엔지니어 출신의 친구와 골프채 얘기를 하다 "우리가 직접 한번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엔지니어 입장에서 보면 고가의 수입품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하더군요.우리가 만들면 저렴하고도 고품질의 국산채를 개발할 수 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제품은 엔지니어 친구가 만들고 판매는 이 사장이 맡기로 했다. 이 사장은 "장사의 '장'자도 몰랐지만 좋아하는 골프관련 사업이고 전혀 다른 일을 해본다는 흥분도 작용해 덥석 사장 자리를 맡았다"고 말했다. 이 사장도 자본금 5억원중 1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고생문'은 열리기 시작했다. 외주 제작이긴 했지만 골프채를 직접 설계,제작하는 일은 만만찮은 도전이었다. 생산공장에서 제품을 만드느라 밤샘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채를 만들어 골프숍에 들여놓고 판매를 부탁하면 "마진을 40% 달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기 일쑤였다. 결제도 질질 끌고 물량도 제대로 나가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이런 유통구조로는 도저히 살아날 수 없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바로 '옥션'이란 전자상거래 사이트였다. 그는 "작년부터 옥션을 통한 판매를 본격화했다"며 "초기 한달에 3백만원 올리던 매출이 지금은 4천만원대로 10여배나 뛰었다"고 소개했다. 가방까지 포함한 골프클럽 풀세트를 88만원이란 저가에 팔지만 품질은 싱글 핸디캐퍼들에게 칭송받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옥션내에서 옵티마스포츠의 명성은 자자하다. 이 사장은 "브랜드 인지도를 확실히 높일 때까지 저가전략을 택하겠다는 생각이 전자상거래에서 골프클럽이 예상외로 인기를 얻게 된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창업이후 직원은 물론 내 월급도 한번도 미룬 적 없었다"며 "은퇴한 동료들과 비교해보면 50대 후반이기는 했지만 창업결심을 했던 게 너무나 다행"이라며 활짝 웃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