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정보보안 강화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정보 유출에 따른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데다 최근 검찰의 느닷없는 압수수색으로 경영 정보가 거침없이 외부로 빠져 나가고 있는데 따른 자구책이다. A그룹은 지난 1일 일부 계열사 주요 간부들을 대상으로 '압수수색 대비 가상훈련(CPX)'을 실시했다. 이 그룹은 이날 새벽 비상연락망을 동원해 간부들을 소집, 가상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간부들이 보안비상 행동강령에 맞춰 제대로 행동하는지를 체크했다. 일부 계열사는 특히 검찰의 압수수색을 가정, '말 맞추기'와 '몸싸움' 등의 훈련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계열사 관계자는 "정보 유출 사례가 많아지면서 간부들에게 보안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기 위한 훈련이었다"며 "특히 검찰 압수수색의 경우 수사에 필요하지 않은 정보까지 모두 유출돼 복원이 어려워질 수 있는 만큼 자료를 분산해 보관하는 방안도 새롭게 시달했다"고 말했다. B사는 조금이라도 오해를 살 만한 자료는 모두 폐기하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기밀사항을 적어둔 서류는 물론 회의 중 아무 생각없이 낙서한 메모도 모조리 없애도록 했다. 직원들에게는 PC의 하드디스크를 대체할 수 있는 휴대용 USB메모리를 지급해 중요한 문서를 옮겨담도록 했다. PC에 보관돼 있어야 할 서류를 주머니에 넣어다니게 한 셈이다. 일부 PC는 포맷을 통해 '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리거나 하드디스크를 아예 교체했다. 회사는 자료가 PC에 보관될 경우 어렵지 않은 조작으로도 유출이 가능해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는 설명이지만 검찰의 압수수색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데 이견을 달지는 않았다. 회의 풍속도도 달라졌다. C사는 직원들에게 웬만한 회의 내용은 기록하지 말도록 했다. 기밀 사안인 경우 구두로 언급하는 대신 연필로 메모했다가 그 자리에서 바로 지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회의할 때 볼펜 대신 연필과 지우개가 필수가 될 정도"라며 "정보기관도 아닌데 무슨 요원처럼 훈련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D사는 모든 불요불급한 각종 문서를 파기한데 이어 사내 인트라넷망 접속 과정에서 모두 4단계의 본인 확인 과정을 거쳐야 로그인이 가능하도록 보안시스템을 고쳤다. D사 관계자는 "보안 마인드를 늘 강조해 왔다지만 기업들이 요즘처럼 앞다퉈 보안망을 강화하기는 처음 같다"며 "최근 검찰의 전방위 기습 수색이 기업 보안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E사 관계자는 "조금이라도 의심 살 만한 자료는 모조리 없애버리는 바람에 업무에 적잖은 차질이 있다"며 "안 그래도 연말이라 업무가 많은데 검찰 수사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