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당초 수사 확대를 우려하면서 청와대나 정치권의 '거중 조정'을 바라 왔던 것이 사실.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선(先) 고해성사-후(後) 사면 검토' 발언이 나오고 '경제에 악영향이 없도록 하겠다'는 검찰 측의 입장이 간간이 흘러나오면서 이번 사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이 압수수색이라는 강수를 동원하면서 실오라기같은 기대마저 깨져버렸다. ◆걷잡을 수 없는 수사 확대 재계는 지난 2월 SK그룹에 들이닥친 검찰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치고 있다. 특히 LG홈쇼핑이 재계 2위 그룹인 LG의 계열사인데다 과거 지주회사로 편입되기 전 그룹 오너 일가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았던 기업이라는 측면에서 만만찮은 파장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LG의 경우 강유식 구조조정본부장이 이미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데 이어 구본무 회장까지 출국금지된 상태. 따라서 검찰은 상당한 방증자료를 확보한 상태에서 압수수색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재계 일각에선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대선 자금뿐만 아니라 일반 비자금까지 조사를 확대하겠다'는 검찰의 공언에 LG가 '시범 케이스'로 걸려든 것 아니냐는 성급한 관측까지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상당수의 그룹 수뇌부가 출국금지된 삼성과 현대자동차 측도 언제 검찰이 강압적인 손길을 뻗쳐올지 모르는 처지가 됐다.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측에 임원 개인 명의로 후원금을 낸 삼성의 경우 정상적으로 회계처리가 됐는데도 불구하고 검찰이 이를 쉽사리 믿지 않으려 한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검찰이 이번 기회에 재계의 항복을 받으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대선 관련 기업자금 수사가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기는 틀린 것 아니냐"고 낙담했다. ◆중견 그룹들도 초비상 LG홈쇼핑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기 전에 가장 충격을 많이 받은 그룹은 금호.금호는 그동안 대선자금 관련 리스트에 빠져 있었으나 지난 17일밤 구조조정본부장 격인 오남수 전략경영본부 사장이 검찰에 소환돼 밤샘 조사를 받으면서 수사대상에 오른 사실이 확인됐다. 그룹 관계자는 "오 사장의 소환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아침에 신문 보도를 보고야 알았다"며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냐"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금호뿐만 아니라 한화 두산 동양 풍산 삼양사 등의 중견 그룹들도 지난 대선때 정치자금을 여야 정치권에 전달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 기업 관계자들을 상대로 △자금 조성 경위 △전달 경로 △회계 처리 등을 집중 추궁하며 일반 비자금에 대한 수사확대의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압수수색같은 방법을 통해 자금거래 내역을 통째로 뒤지겠다고 달려든다면 어떤 기업도 정상적인 경영을 할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자금의 수혜자인 정치권이 먼저 고해성사를 한 뒤 해당 기업들에 대해선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