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유통 트로이카] 할인점 : 할인점 10년, '유통 지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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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1월 12일.
서울 노원구 창동에 할인점 이마트가 문을 열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할인점은 생소한 것이었다.
점포 모양이 큰 창고 같은데다 판매직원도 없었던 탓에 물건을 사러 들어간 소비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직원이 없다보니 화장품을 발라 보거나 식품포장을 뜯는 사람도 있었다.
어리둥절했던 것은 소비자만이 아니었다.
제조업체들도 대리점과 백화점 눈치를 보느라 할인점에 납품하길 꺼렸다.
직원들을 동원해 이미 납품한 물건을 되사가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할인점 직원들은 밤을 새워가며 제품에 바코드를 붙여야 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국내 할인점은 그동안 점포수를 2백70여개로 늘리며 한국 유통혁명을 선도했다.
가격결정권은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급속히 이동했다.
지난 6~12일 이마트 57개점에서 시작된 '10년전 가격 판매 행사'는 달라진 할인점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1백대 인기품목(1천만개)은 최고 60% 싼 값에 대부분 팔려 나갔다.
가격을 대폭 내려 팔겠다는 이마트 요청에 제조업체들은 군말없이 협조했다.
2003년은 한국 유통사에 기념비적인 해로 남을 것 같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할인점 매출은 9조1천억원으로 백화점 매출(8조7천억원)을 처음 역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1948년 미국에서 할인점이 출현, 백화점 매출을 앞지르는데 50년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성장세가 아닐 수 없다.
"할인점이 한국유통시장 발전을 40년 앞당겼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 할인점 효과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성장한 할인점은 합리적인 소비문화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과시형ㆍ충동형 소비가 대부분 사라지고 합리적ㆍ지성적 소비패턴이 정착됐다.
소비문화 변화의 밑바닥엔 할인점의 막강한 구매력이 자리잡고 있다.
할인점은 유통ㆍ제조업간 역학관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면서 가격결정권이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넘어오는데 기여했다.
여기에 중간 도매상을 거치지 않는 직거래가 일반화되면서 물건값이 내려갔다.
유통단계 축소로 생긴 마진은 고스란히 소비자 혜택으로 돌아갔다.
할인점은 물가안정과 고용창출에도 기여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과거 10년간 유통산업이 1% 성장할 때마다 소비자물가는 0.5%포인트 떨어졌다.
유통산업 성장의 주역인 할인점이 물가를 낮추는 역할도 한 것이다.
할인점이 1개 문을 열 때 필요한 신규 인력은 6백명.10년간 2백70개 점포가 늘었으니 16만여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긴 셈이다.
◆ 가족 쇼핑문화 정착
쇼핑문화의 혁신도 빼놓을 수 없다.
쇼핑은 여성들만 하는 일이란 사회 통념을 할인점이 바꿨다.
가족 중심의 쇼핑행태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더 이상 할인점에서 쇼핑카트를 끄는 남자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신세계닷컴은 지난 4∼6일 1만2천3백83명을 대상으로 '할인점이 끼친 영향'에 대한 온라인 설문을 벌였다.
그 결과 40.03%가 '가족단위의 쇼핑문화 정착'이라고 응답했다.
'물가안정에 기여'라는 답이 근소한 차로 2위(39.47%)에 올랐으며 '다양한 상품개발'(10.38%), '근거리쇼핑으로 시간 절약'(10.12%)이 뒤를 이었다.
할인점은 최근 들어 원스톱 쇼핑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임대매장(테넌트)의 확산이 원스톱 쇼핑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1998년 이마트 분당점에 안경점과 푸드코트가 입점했고, 99년엔 맥도날드 파파이스 배스킨라빈스 등이 할인점 핵심 테넌트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는 법인 테넌트가 속속 매장을 내기 시작해 이젠 웬만한 할인점에선 서점 병원 미용실 놀이시설 자동차센터 여행사 동물병원 등 30여개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 4백70개점, 매출 40조원 가능
할인점 시장은 얼마나 더 커질까.
일각에서 할인점 시장이 이미 포화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업계는 2009년까지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신세계유통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7조4천억원이던 할인점 매출은 2005년 27조2천억원, 2009년엔 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점포도 지금보다 2백여개가 더 늘어 2009년엔 인구 10만명당 1개 꼴인 4백70개를 웃돌 것이란 분석이다.
한편 대형 유통업체가 시장을 대부분 장악하는 과점화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빅3' 할인점은 시장의 59%를 점유했다.
여기에 까르푸와 월마트까지 포함하면 점유율은 70%를 상회한다.
업계 관계자는 "2007년엔 빅5가 전체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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