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가는 '동북아 물류중심'] (4) 인천공항 '하드웨어만 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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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미국인 기계류 수입상 폴 마이어씨(43)는 공항터미널내 간이 호텔에 짐을 풀고 커피숍에서 국내 거래선과 상담을 했다.
하루 뒤 일본으로 떠날 참이라 인터넷을 통해 본사와 업무처리를 하려 했지만 인터넷을 이용할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어 불편을 겪었다.
인천공항 배후지에 무역상담, 국제금융, 국제상거래통신 등을 위한 1단계 5만평 규모의 국제업무단지 청사진은 화려하지만 비즈니스 호텔 한 동만 최근 완공됐을뿐 나머지는 지지부진하다.
전자부품 무역업을 하는 김모씨(53)는 인천공항을 동북아 허브공항으로 키우겠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홍콩 첵랍콕이나 싱가포르 창이공항, 네덜란드의 스키폴공항은 수입화물을 하루 만에 찾을 수 있다.
이에 비해 인천공항은 4∼5일 걸린다.
창이공항 등이 한번의 전자신고만으로 통관절차를 마치도록 하고 24시간 통관체제를 갖춘데 비해 인천공항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 인천공항의 최대 위협-상하이 푸둥(浦東)공항 =지난 99년10월 개항한 중국 상하이 인근 푸둥공항은 최근들어 승객처리에서 연평균 20% 안팎, 화물처리에서 13~33%의 초고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직 처리물동량면에서 인천(2002년 기준 2백13만t)에 비해 뒤지지만(1백31만t) 추격속도는 실로 위협적이다.
푸둥공항은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한 중국 상공업의 중심인 '상하이'라는 최고의 지리적인 입지혜택에 힘입어 오는 2010년이면 활주로 4개, 여객터미널 4동 (80만㎡) 규모의 초대형 공항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이 경우 연간 항공기 운항 29만회, 여객처리 7천만명,화물처리량 5백만t으로 비약할 전망이다.
푸둥공항은 특히 2010년 전까지 환적화물 처리를 늘리기 위한 화물터미널 건설에 집중 노력해 인천공항의 환적기능을 상당부분 대체한다는 구상이다.
◆ 규모는 세계적, 시스템은 기대이하 =인천공항의 지난해 여객 이용자수는 하루 5만7천명꼴인 2천92만4천명.
국제선 기준으로 세계 12위 수준이다.
화물은 2백1만7천t으로 4위.
화물 규모로는 허브공항의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객ㆍ화물처리 시스템과 서비스 수준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3만9천2백여평의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은 외항사에는 비좁은 공간이 된지 오래고 대한항공은 2005년, 아시아나는 2008년이면 포화상태에 이른다.
부랴부랴 3만여평의 터미널 증설공사가 시작됐지만 2008년까지 완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단속위주의 통관정책이 아직도 여전해 서류없는 전자신고 비율이 낮고 화물전용 통관기관도 없는 실정이다.
◆ 환적화물 증가의 허점 =인천공항의 지난해 환적화물 처리실적은 78만7천여t으로 전년과 대비할땐 12.7% 늘었지만 전체 화물과 대비한 환적률은 0.7%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상용 경인해운항공 대표는 "최근 방문한 상하이 푸둥공항과 다롄, 톈진공항 등 중국의 주요 공항들이 물류기지로 도약하려는 전략(허브&스탁)에 따라 화물터미널 시설을 속속 보강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며 "이는 곧바로 인천공항의 환적수요 감소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하이 푸둥의 경쟁력 강화는 다름 아닌 동북아 환적화물처리 능력 및 서비스 수준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인천 환적시장의 잠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 허브기능과는 거리가 먼 배후시설 =인천공항의 1차 배후기능인 공항신도시만 하더라도 글로벌 경쟁력은커녕 수도권의 다른 신도시에 비해서도 도시 경쟁력면에서 형편없이 뒤지는 수준이다.
3천억원이 투입돼 건설된 65만평의 공항신도시는 현재로선 실패작이다.
공항배후 주거 및 업무기능을 목표로 세워졌지만 1차 수요층인 공항 및 항공종사들마저 입주를 기피하고 있다.
인천공항 주변에 15만평이 배정된 국제업무단지 건설도 지정 이후 5년째 사업이 답보상태이고 인천공항철도(인천공항~김포공항~서울) 사업도 2008년에야 완공될 계획이다.
이 때쯤이면 상하이 푸둥공항 등 동북아 지역의 경쟁자들이 인천과 맞대결할 준비를 거의 마무하게 된다.
이런데도 당국(건설교통부ㆍ인천공항)은 '문제없다'는 안이한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인천공항과 경제자유구역의 송도신도시간 연계발전을 위해 계획된 연륙교(송도~인천공항 연결 해상교량) 건설도 지지부진하다.
공항 배후에 관광단지 등을 대대적으로 개발하려는 '영종도 개발계획'도 사업주체인 인천시가 주민 자력개발과 공영개발 사이에서 정치적인 계산 등으로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청사진조차 완성하지 못한 상태다.
김희영 기자 song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