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워낙 적은 인원을 뽑다 보니 이젠 공인회계사도 토익 만점자도 취업을 보장받지 못할 정도입니다. 웬만한 중견기업의 입사시험에도 미국 유수의 MBA(경영학 석사) 출신자들의 지원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취업포털 스카우트의 김현섭 대표) 심각한 취업난 탓에 올 하반기 취업시즌에선 고학력자 및 각종 전문자격증 지원자의 '하향 지원'이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따라 특별한 자격증이 없는 대졸예정자, 기졸업자 등 신규 구직자들의 '취업 체감온도'는 더욱 냉랭해지고 있다. '하향지원' 경향이 가장 심한 곳은 각종 전문자격증이 필요한 금융파트.산업은행의 경우 70명 모집에 1만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려 무려 1백43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원자 중에는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변호사와 함께 최고의 전문직업군으로 분류되던 공인회계사(CPA)만도 1백50명에 달했다. 이밖에 미국공인회계사(AICPA) 1백50명, 금융위험관리사 45명, 국제공인재무분석사 2명 등과 함께 토익 만점자도 12명에 달했다. 약 80명을 선발하는 대우증권의 전형에서는 공인회계사 53명, 미국공인회계사 1백68명이 입사원서를 냈다. 80명을 선발할 예정인 신용보증기금의 경우 지원자중 석사학위 소지자가 4백54명에 달했으며 외국에서 학위를 마친 유학파도 60∼70명에 달했다. 이밖에 3명을 선발하는 국민투자신탁운용의 경우 미국 유수의 MBA 출신 30여명이 지원서를 제출했다. 금융파트 외의 제조업 등 일반 기업의 입사시험에도 '우수인재'가 넘쳐나고 있다. 50대 1의 경쟁률을 보인 SK(주)의 경우 석ㆍ박사 학위소지자가 20%선에 달했으며 상당수 지원자들은 토익 점수가 9백점 이상이었다. 70대 1의 입사경쟁률을 기록한 SK건설에도 석ㆍ박사 3백90명이 지원했으며 21명을 뽑는 한화건설에서도 석ㆍ박사, 미국공인회계사, 유학파 등이 지원자의 40%선에 달했다. 구직자들의 이같은 하향 지원추세는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결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20일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한국노동패널조사(KLIPS) 5차연도(2002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취업자 5천8백40명중 19.8%인 1천1백58명이 하향 취업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하향 취업이라는 것은 근로자의 학력수준이 해당 직무나 직종에서 요구하는 학력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향 취업현황을 연령별로 보면 30세 미만인 청년층이 22.9%로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젊을수록 과잉교육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하향 취업 현상이 점차 강화될 여지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전문대 졸업자중 25.0%가 하향 취업한 것으로 나타나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대졸이상 21.8%, 고졸 20.9%, 고졸미만 15.4% 등의 순이었다. 스카우트의 김현섭 대표는 "취업난이 심각해지자 구직자들이 '일단 붙고보자'는 식으로 하향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채용시장을 왜곡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하향 취업자들은 직무에 대한 만족도가 낮기 때문에 이직률도 높아 기업들도 적합한 인재를 찾기 위해 수차례 채용을 반복해야 하는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