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호 남단에 자리잡은 시카고는 '바람의 도시'로 불린다. 지난 주말 오후 게리 베커 교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시카고대학을 찾았을 때도 바람이 몹시 불어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베커 교수는 '사회과학조사' 건물 5층에 있는 연구실까지 걸어 올라왔다. 73세의 마른 체구였지만 건강에 신경을 쓴 탓인지 40여분간 진행된 인터뷰 도중 힘들어 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번 테니스를 치고 틈틈이 수영을 한다고 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공부보다는 스포츠를 좋아했던 그였다. 특히 핸드볼을 잘했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 강의하고 강의가 없는 날도 연구와 논문지도, 비즈니스위크지 기고 등을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연구실에 나올 정도로 바쁘다고 했다. 베커 교수는 90년대 중반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한국은 인적자본이 좋고 교육 수준이 높지만 금융구조가 다소 취약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자산인 근로자들에 대해 훈련을 강화하고 그들의 사기를 높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미국의 환율 절상압력 문제부터 의견을 들어봤다. [ 대담 : 시카고=고광철 특파원 ] ----------------------------------------------------------------- -미 행정부가 중국 위안화 및 일본 엔화를 절상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미국 제조업체의 일자리가 줄어든게 마치 달러 강세 때문인 것처럼 중국과 일본을 몰아붙이고 있는데 세계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습니까. "달러 강세가 미국 제조업 부진의 중요한 요인은 아닙니다. 주로 국내 문제 때문이었죠. 과다한 투자와 거품 붕괴 때문에 경기침체가 초래됐습니다. 중국 경제는 지금 괜찮습니다. 미국은 중국에 위안화 절상 압력을 넣어선 안됩니다." -일본 경제가 10년 불황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데 세계 경제가 갈수록 좋아질 것이라고 보십니까. "좋아질 것입니다. 독일 경제가 부진하고 프랑스의 경제성장이 더디지만 미국 경제 회복세가 빠르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한국이나 중국에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와 지난달 사망한 모딜리아니 교수 등은 얼마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세금감면 정책이 부자들에게만 혜택을 준다고 비판했는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들은 친한 친구들입니다만 그같은 비판은 잘못된 것입니다. 세금감면이 단기적으론 부유층에 혜택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투자가 늘어나고 자산이 쌓이면서 생산성이 높아져 결국 근로자들의 임금도 올라가게 됩니다. 감세 정책은 미국 경제를 올바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세율은 낮을 수록 좋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정부의 씀씀이가 있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의 세금은 거둬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세금은 경제주체들의 행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입니다. 정부를 운영할 재원만 확보된다면 세율은 낮을 수록, 그리고 단일화될 수록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산성을 높이는 엔진은 무엇입니까.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여러가지 힘의 복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첨단기술, 인테넷, 나노테크, 지놈, 국제화로 인한 경쟁격화, 교육, R&D(연구조사) 등. 이런 모든 힘이 작용했습니다. 컴퓨터로 시작된 3차 산업혁명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만 해도 벌써 8년째 생산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직원들을 적게 채용해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90년대 말엔 생산성 향상과 고용 증대가 동시에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단기적으론 고용을 줄이면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성이 높아지면 고용도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주력해야 할 분야는 무엇인가요.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일반적 요인으론 근로자들에 대한 훈련과 사기진작을 들 수 있습니다.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인적자본입니다. 모든 기업들은 그들에게 얼마나 제대로 투자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한 뒤 필요한 훈련을 시키고 근로의욕을 높여줘야 합니다. 두번째 요인은 산업별로 조금 다르지만 컴퓨터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용이나 재고관리 정도만 컴퓨터로 해도 되는 업종이 있는 반면 병원처럼 고도의 컴퓨터 기술이 필요한 곳도 있습니다.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국의 인적자본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선 교육수준이 높습니다. 소득은 중간 정도지만 대학진학률은 가장 높지 않습니까. 근로자들도 열심히 일합니다. 요금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열심히 일하는게 한국 근로자들입니다. 그런 것이 좋은 인적자본입니다." -그렇지만 교육시스템에 대해선 국민들의 불만이 이만 저만 높은게 아닙니다. 고등학생 때 대학 진학을 위해 너무 진을 빼는 바람에 대학에 들어가선 피곤해 하는게 큰 문제입니다.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학생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선 제대로 공부시켜야 합니다. 미국 학교 시스템이 그렇습니다. 하버드대 시카고대 등을 보십시오. 학생들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지 아십니까." -북한 핵문제와 강성 노조가 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 핵문제는 더이상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관여하는 국제적 이슈가 됐기 때문에 그 자체가 한국 투자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강성 노조는 다릅니다. 세계는 지금 선ㆍ후진국 할 것없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노조가 얼마나 강성인지는 모르지만 노조가 문제가 된다면 외국 기업들은 투자하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외국 기업들은 언제든지 다른 나라로 갈 수 있습니다. 모든 나라가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죠." < gwang@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