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서 8군을 하나의 검(劍)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역할이 그 검의 어느 부분인지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대검(大劍)의 칼날 부분.가파른 능선 위에 구축한 좁은 참호의 벽에 반쯤 기대고 누워서 흰구름 사이로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나는 우리의 역할을 '대검의 칼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꽤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1951년 4월 임진강 전투.세계 전사(戰史)에서 가장 위대한 방어 작전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전투의 선봉에는 영국 그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인 그로스터 부대가 있었다. 이 부대는 중공군 3개 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인해전술에 밀리고 탄약이 떨어진 상태에서 후퇴 명령을 받는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모두 중공군에게 생포되고 만다. 이 때 포로가 됐던 병사 중 한명인 파라-호커리 대위.그가 임진강 전투와 28개월간의 포로생활을 기록한 '대검의 칼날'이 한국어로 번역됐다. 지난 1954년 출간돼 영국과 유럽에서 50년 동안 쇄를 거듭한 이 스테디 셀러의 한국어 제목은 '한국인만 몰랐던 파란 아리랑'(김영일 옮김,한국언론인협회,9천9백원). 1951년 4월28일 포로가 돼 1953년 8월31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할 때까지 일곱번이나 탈출을 시도하고 중공군과 북한군의 끊임 없는 세뇌 공작에도 굴하지 않았던 과정을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파라-호커리 대위는 북유럽 연합군 사령관을 지냈으며 영국 여황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현재는 퇴역해 한국전쟁사를 집필하고 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