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가 할퀸 상처가 워낙 큰 탓일까. 추석연휴 중 노무현 대통령이 가족·측근들과 공연을 관람한 것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정치권은 "사죄하라"며 공세를 퍼부었고,언론보도나 시민들 반응도 부정적인 쪽이 많았다. 결국 청와대가 사과했다. 24일 오후 늦게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서였다. 공연관람에 대해 "국민들께 송구스럽다"고 노 대통령이 밝혔다는 것.'송구'가 '유감''사과'와 어떻게 다른지는 논외로 치자. 청와대 소식지에 A4용지 한 장을 가득채운 설명에 송구스럽다는 단 한 줄 외에는 전부 해명과 변명이다. "여러 예술 장르 중에서도 연극분야 환경이 가장 열악하다는 점이 '인당수 사랑가'를 택한 이유였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표시하는 차원에서 관람한 것이지,관련 상황을 도외시한 채 취미생활로 관람한 것도 아니다" "관저에서 TV보는 것이나 수시로 보고를 받으면서 상황파악과 지시를 체계적으로 하고 있는 상태에서 청와대 지근거리 행사장에서 이미 예정됐던 일정을 진행하는 것이나 실제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었다" 송구스럽다로 시작한 해명은 이렇게 정당성 주장으로 이어졌다. 사과의 형식에도 아쉬움이 있다. 회견도 아니었고,수석·보좌관 회의같은 공식 자리도 아니었다. 종종 그런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해온 노 대통령이었다. 25일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으로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동의안을 호소한 것도 그런 예다. 노 대통령은 25일 오전 문희상 비서실장과 상의하다 9시10분쯤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했고,30분뒤 기자들을 상대로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런데 공연관람 사과는 지역 언론과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했다는 것이 측근의 설명이다. 정치가로,수상으로 인도인의 가슴에 남아있는 네루의 일화가 떠오른다. 인더스강 대홍수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집이 붕괴된 재해현장을 방문한 네루는 아무말 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돌아갔다고 한다.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일까.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하고,지원금을 확대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무엇이 있는 것 같다. 허원순 정치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