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차전지 업계가 '치킨 게임(a game of chicken)'에 돌입했다. 치킨 게임이란 미국의 무모한 10대 청소년들이 죽음을 무릅쓰며 자동차를 마주보고 달리다 먼저 피하는 쪽을 치킨(겁쟁이)으로 놀리는 일종의 담력시험. 대규모 증설로 경쟁사들을 질리게 하는 2차전지 업계의 투자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얘기다. SKC는 25일 충남 천안공장에서 휴대폰과 노트북PC 등 휴대용 이동통신기기에 사용되는 차세대 2차전지인 리튬폴리머전지 양산라인을 준공했다. 월 생산능력을 25만셀에서 1백25만셀 규모로 늘린 SKC는 또다시 2005년까지 생산능력을 3백만셀로 늘리겠다는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삼성SDI는 올 연말을 목표로 생산능력을 1천8백만셀 규모로 확충 중이다. 생산능력을 월 7백20만셀에서 1천4백10만셀로 늘린지 9개월 만이다. 이 회사는 2005년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을 22%로 이 부문에서만 연간 1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세계 2위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월 7백만셀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는 LG화학도 당초 2005년으로 잡았던 1천8백만셀 체제 구축 일정을 올해 말로 앞당겨 놓고 설비 증설을 서두르고 있다. 이 회사 역시 2005년에는 세계 빅3로 올라선다는 방침이다. 업체들의 이같은 증설경쟁은 남보다 한 발 앞서 '규모의 경제'를 이뤄 경쟁사를 조기에 제압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 탓에 공급 과잉에 따른 일부 기업의 경영위기를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그동안 일본업체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등 2차전지 소재부문도 제일모직에 이어 동부한농화학이 뛰어들며 경쟁구도를 갖추게 됐다. 동부한농화학은 최근 고체전해질 전극 등 소재부문 기술력을 갖춘 벤처기업 '파인셀'을 인수하면서 2차전지 핵심소재 개발에 뛰어들었다. 2년전부터 연간 1천t 규모의 전해액을 생산해온 제일모직은 난연성 전해액 등 차세대 제품 개발을 통해 세계시장 점유율을 30%까지 높인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산요 소니 등 일본 선두기업들의 견제와 BYD 등 중국기업들의 저가공세가 더욱 심해지고 있어 여건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치열한 경쟁의 결과로 어차피 몇 개 업체는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대규모 증설로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