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놓은 내년도 예산안은 우리 재정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경기회복 지연에 따른 세수격감이 예상되는데다 매각할 공기업 주식이 더이상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겠다던 대국민 약속을 뒤집을 수도 없는 딜레마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대미 관계악화에 따른 급격한 방위비 증액 필요성과 경직성 높은 복지비의 자연증가는 재정의 운신 폭을 더욱 좁히게 됐다. 내년도 예산 증액분의 대부분을 방위비와 복지비 증액에 쏟아붓다보니 다른 사업에 돈을 쓸 엄두조차 못내게 돼 있는 것이 우리 재정이 처한 현실이다. 이런 재정구조의 경직성은 공기업 주식매각 등 일시적인 세외수입을 한번 올리면 내리기는 힘든 복지비 지출을 늘리는데 사용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이러다 보니 내년도 상환 예정이었던 2조원의 공적자금을 세출로 돌려 쓰고도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고 경기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은 대폭 삭감되는 등 불황기 예산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예산구조가 되고 만 것이다. 물론 정부의 균형재정에 대한 의지는 결코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과연 정부의 장담대로 지켜질지는 벌써 부터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내년도 세수목표 달성도 장담할 수 없는데다 내년에도 대규모 재해 등 추경편성 요인이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 적자국채 발행 중단은 금년처럼 공수표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와는 별개로 경기 침체기에 단기적인 균형재정만을 고집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특히 내년도 예산안에서는 성장 잠재력 확충과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사회간접자본 투자와 산업지원을 대폭 줄였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4%대로 추락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더욱 위축시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균형재정 달성에도 결코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국회심의 과정에서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 논설위원ㆍ經博 kghwchoi@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