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는 서양화가 이기봉씨(47·고려대 교수)는 회화와 설치작업을 병행하는 작가다. 평면작업에서 보여줬던 물질에 대한 탐구는 설치작품에서도 이어진다. 물질 중에서도 작가는 특히 '물'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평면 영상 설치작들은 대부분 물과 관계가 있다.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대형 설치작 'The Sleep Machine'은 전시장 한가운데 침대가 놓여 있고 그 사면을 붉은 물방울이 끊임없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나일론 줄에 적색 글리세린을 바른 것으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관객은 홍등가를 연상시키듯 화려한 분위기에 시각적으로 반응을 일으키지만 자세히 쳐다보고 있으면 저절로 졸음이 온다. 강렬한 형광색의 책상 설치작인 '잔인한 커플'은 책상 주변에 흘러내린 색채가 고체도 녹아버릴 수 있다는 인상을 줘 화려한 시각의 '허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족관 속에 두 개의 병이 부유하는 'I Couple'은 인간의 마음 속 두가지 자아를 의미한다. 병들은 서로 싸우기도 하고 때론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2층에 설치된 평면작인 'Bubble Reading' 시리즈는 흰색조의 화면과 검은색 화면,아날로그적 묘사와 디지털적인 기호의 나열이 묘한 대비를 이루는 작품이다. 꽃과 같은 자연물이 배어나오게 하는 실제 오브제의 형상과 물방울이 맺힌 듯한 이미지를 대비시켜 구체적인 사물이 형체도 없이 추상적인 사물로 변해버린 모습을 보여준다. 이씨가 이번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들은 평면이든 설치작이든 현대적인 세련미가 돋보인다. 2001년에는 분당 요한성당의 벽화작업을 2년에 걸쳐 완성하는 등 공공미술 분야에서 기량을 보여주기도 했다.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한 작가는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1986년)과 토탈미술대전 미술상(1995년)을 수상했다. 27일까지.(02)735-8449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