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외국인 투자자에 휘둘리고 있다. 외국인은 국내 상장기업 주식을 지난 92년 증시개방 이후 가장 많은 37.5%(8일 현재)나 확보,한국 증시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이들의 영향력은 지난 5월 중순 이후 6조3천억원 이상의 외국 투자자금이 증시에 들어오자 580선이던 종합주가지수가 720선으로 밀려 올라간 데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은 더 나아가 국내 유수기업의 경영권마저 넘보고 있다. SK(주)가 소버린자산운용(지분율 14.9%)의 경영간섭에 시달리고 있는 데 이어 현대엘리베이터는 외국인의 집중적인 지분 매입 공세로 방계 계열사들까지 나서 우호지분을 늘리는 등 경영권 방어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전자도 외국계 투자회사인 맨체스터시큐리티즈와의 소송에 휘말리는 등 경영권에 도전을 받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이 잇따라 위협받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낮다는 기업지배구조의 취약성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대부분 과거 계열사 상호출자 등을 통해 지배구조를 유지해 왔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이같은 연결고리가 끊겨 지배구조가 크게 약화돼 있는 상황이다. 또 국내 대기업들의 주가가 대부분 기업의 내재가치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 것도 외국인이 공격적으로 지분을 매입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외국인에게 국내 기업들이 적은 투자자금으로도 적대적 인수·합병(M&A) 또는 그린메일링(지분확보 후 대주주에게 비싼 값에 되파는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좋은 투자대상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박경민 한가람투자자문 사장은 "한국 증시에는 주가가 기업의 펀더멘털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 상장·등록기업들이 수두룩하다"면서 "이는 적은 돈으로 우량주를 많이 살 수 있는 기회를 외국인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국내 상장·등록기업에 대한 외국인 보유비중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며,외국인으로부터 경영권을 도전받는 사례도 속출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