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밤 현대자동차 노조가 임단협 막후교섭에서 회사측으로부터 받아낸 비정규직 처우개선 방안이 노조와 현장 비정규 노조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조합원들간 첨예한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노조는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해 할 만큼 했다는 입장이지만 비정규직 노조에선 "2,3차 하청업체 근로자들에게도 똑같이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현대차 현장 노조들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하투(여름투쟁) 명분의 하나로 내걸어 놓고선 실제론 비정규직을 방치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면서 집행부에 각성을 촉구했다. 반면 노조 조합원들 사이에선 "집행부가 정치투쟁으로 한국경제를 도탄에 빠지게 한다는 국민들의 곱지 않은 눈총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에 매달리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대차 사측은 이처럼 비정규직과 정규직간 미묘한 관계가 갈등으로 비화되고 그 불똥이 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처럼 올해 하투의 두드러진 특징중 하나는 단위사업장(기업) 내부의 노동세력이 각개약진하는 모습을 보인 점이다. 집행부는 민주노총과 같은 상급단체와 공동 보조를 취하느라 경제특구 반대에서 외국인 근로자 문제까지 투쟁대상에 포함시키고 조합원들은 임금 인상 투쟁에 열을 올리는 이중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양 쪽의 움직임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 회사로선 노무관리 부담이 그만큼 늘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조합원들의 집행부 '비토' =지난 6월24일 현대차 노조 집행부는 노조사상 처음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과반수를 겨우 넘겨 가까스로 파업투쟁을 이끌어냈다. 집행부는 이어 27일 상급단체인 민노총의 전략에 따라 산별전환(금속연맹노조 가입) 투표를 실시했지만 조합원들로부터 '비토' 당했다. 리더십에 잇따라 상처를 입은 집행부는 임단협 협상에서 사측을 최대한 압박해 민노총과 조합원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전략을 밀어붙였다. 현장 조합원들은 집행부가 민노총의 전위부대 역할을 하는데 식상해 한다. "민노총의 전위부대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인 이슈에 너무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본다." "우리 현대차가 금속연맹노조에 가입해 중소기업 노조들과 공동 보조를 취해 봐야 하등 득이 될게 없다." 현대차 조합원들의 실리주의와 집행부의 정치투쟁 노선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 집행부의 노선에 반기를 드는 조합원들 =두산중공업 노조에서는 민노총의 파업에 간부 70여명만 참가하고 조합원 3천6백여명이 집행부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정상 조업을 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두산중공업 노조의 한 간부는 "우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을 놓고 파업하자고 하는데 누가 발 벗고 나서겠느냐"고 말했다. 이같은 집행부와 조합원 간의 노노(勞勞) 불협화음 양상은 대구ㆍ부산ㆍ인천지하철 노조의 궤도파업에서도 나타났다. 파업현장에서 이탈하거나 집행부에 등을 돌리는 노조원이 늘어나면서 지난 6월 민노총의 부분 총파업에선 당초 10만명이 참여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파업 열기는 냉랭했다. ◆ 산업현장 내부의 계파 다툼 =대기업 노조에는 노조 집행부 외에 저마다 다른 노선을 추구하는 현장 노동세력(노조 견제세력)이 수없이 많다. 현대차의 경우 민투위, 민노투, 노연투, 실노회, 동지회, 자주회, 현장투, 현노투,전진회 등 노조 계파가 10여개에 이른다. 하반기 새 노조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이들 노동세력이 투쟁성 및 선명성 경쟁을 치열하게 전개하면서 사측은 여느 때보다 노무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8일 실시한 임단협 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도 현장조직들은 대자보를 붙이고 집행부가 퇴직금 누진제와 상여금 인상 등을 쟁취하지 못한 것을 비난하면서 "부결시키자"고 부추길 정도였다. 울산노동사무소 관계자는 "과거에도 분파조직으로 인한 분란은 있어 왔지만 올 들어 노동계의 강성 목소리가 높아지는 분위기를 틈타 부쩍 노노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