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실패'에서 배운다] (1) '독일 경쟁력 왜 약화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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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경제제도는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로 불린다.
자본주의 경제이념인 시장경제에다 '사회적'이라는 관형어를 붙임으로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경제정책 운용이 가능해지도록 길을 열어뒀다.
'라인강의 기적'은 전적으로 시장우위 정책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화와 분배 욕구가 터져나온 1960년대 말부터 세계 최고수준의 복지국가를 지향했고 75년부터는 사회주의를 능가하는 노동 및 교육제도가 도입됐다.
여기에 급작스러운 통일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국가경쟁력은 급속하게 떨어졌다.
◆ 2차대전후 고속성장
첫 총리인 콘라트 아데나워(1949∼63)와 뒤를 이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1963∼66, 이상 기독교민주당)는 군정때 단행된 화폐개혁과 세제개혁을 토대로 가격 자유화를 실시했다.
물가가 오르자 통화량 억제와 긴축재정으로 맞섰고 고용안정 정책을 써야 한다는 압력도 뿌리쳤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축적했던 기술력과 산업시설을 토대로 시장 위주의 정책을 펴 기업들의 생산활동이 활발해졌다.
한국전쟁 특수와 자본재 중간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호재까지 겹치면서 독일은 60년대 중반까지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성장을 이뤄냈다.
◆ 60년대말부터 복지국가 추구
1968년 독일내 민주화 운동과 함께 등장한 빌리 브란트(1969∼74), 헬무트 슈미트 총리(1974∼82, 이상 사회민주당)는 강력한 분배 위주의 정책을 폈다.
질병으로 휴직한 노동자에게 6∼8주의 임금을 지급하고 실업수당 지원금도 확대했다.
△의료보험대상 확대 △연금생활자 의료보험 면제 △장애인에게 일자리 6% 제공 △임대료 보조금 지급 △자녀수당 지급 등 각종 사회복지 정책을 도입했다.
사민당 정부는 또 노동자의 기업내 경영참여권을 확대했다.
종업원 2천명 이상 기업에는 주주와 근로자 대표가 동수로 감사위원회에 참여(2천명 미만 기업의 감사위원회에는 근로자가 3분의1 참여)하도록 하는 노사 등권(等權)적인 공동결정권 제도를 도입했다.
사민당 정부는 결국 성장 둔화와 실업자 증가를 경험해야 했고 때마침 불어닥친 석유파동까지 겹쳐 기독교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 성장 위주로의 전환과 통일 후유증
헬무트 콜 총리(1982∼98, 기민당)는 △소득세 인하 △사회보장비 증가 억제 △규제 완화 △산업지원 정책 등 성장 위주의 정책을 폈다.
대규모 무역흑자를 실현하는 등 경제성장에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서독과 동독의 급작스러운 통일은 70년대부터 도입된 사회복지제도의 문제점을 폭발시켰다.
기업과 개인이 부담해야 할 세금과 사회부담금을 급격히 늘렸다.
△통일세(소득세 법인세의 7.5%) 신설 △부가가치세 인상 △유류세 담배세 실업보험료 인상 등으로 사업 의욕과 근로 의욕이 급격히 떨어졌다.
◆ 사민당의 변화
슈뢰더 총리(98∼현재)는 콜 정부가 90년대 중반 내놓았던 여러 개혁법안을 무산시키고 복지 위주의 정책을 폈다.
그러나 2001년부터 성장률이 0%대로 하락하고 세계경제가 나빠지자 독일 경제는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슈뢰더 정부가 지난달 복지제도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개혁 프로그램 '아젠다 2010'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