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주변 쑤저우(蘇州)에서 고급 스키복 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윤세일 사장(52). 한국에서 들려오는 '연쇄 파업' 소식에 그는 2년 전의 일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수출 채산성이 점점 악화되는 상황에서 터진 노조의 파업은 회사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더 이상 회사 경영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고심 끝에 경기도 안산에 있던 공장을 쑤저우로 옮겼다. "파업이요, 여기는 그런 것 없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사업하는 데도 여러가지 어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처럼 파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여기 직원들은 손재주가 한국 근로자들보다 뛰어납니다. 꾀를 부릴 줄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공장 직원 평균 월급은 각종 수당을 모두 합쳐 1천5백위안(약 23만원)에 불과합니다." 그는 "한국을 떠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쑤저우 인근에 의류공장이 많아 세계의 바이어가 스스로 찾아온다. 작년 초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에서 전등공장 가동에 들어간 김상혁 사장(58) 역시 고임금과 노사 불안을 피해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한 경우다. 그는 "중국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놀랐다"며 중국 기업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허퉁수(合同書ㆍ일종의 고용계약서)' 제도를 설명했다. "직원을 채용할 때 허퉁수를 쓰고, 1년에 한 번씩 갱신합니다. 5백여명의 직원중 근무성적이 불량하거나, 회사 분위기를 해치는 직원 30여명을 올 초 허퉁수 갱신 과정에서 해고했습니다. 타당한 이유를 대니 순순히 받아들이더군요. 노무관리에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요." 기업의 일이라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달려드는 중국 정부의 친(親)기업 정책 역시 기업을 유혹하고 있다. 선양(瀋陽)의 삼보컴퓨터 법인은 지난달 공장 규모를 기존 15만대에서 35만대로 확장했다. "랴오닝(遼寧)성 정부는 선양에서 다렌(大連)간 물류에 어려움이 많다는 삼보컴퓨터의 지적에 1주일에 3회씩, '삼보컨테이너 열차'를 신설했습니다. 내륙 도시의 불리한 점을 완벽하게 해결해준 것입니다. 작년에는 선양시 교육정보화를 추진하면서 컴퓨터 1만2천대, 84억원어치를 모두 삼보컴퓨터로 들여놓기도 했습니다."(이윤식 법인장) 각급 정부, 기술개발구 등의 관계자는 투자유치를 위해 기업처럼 뛰고 있다. 상하이 이웃 도시인 닝보(寧波)의 경제기술개발구. 이곳에 들어서면 넓은 잔디밭 위에 세워진 호화 빌라촌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닝보시가 외국 투자기업을 위해 지은 것으로 1천만달러 이상 투자한 외국 기업에 무료로 제공한다. "각 경제개발구는 주택 자녀교육 오락 등 외국인 편의시설에 승부를 걸고 있습니다. 세금 우대, 일괄 서비스 등은 기본이지요. 한 차원 높은 수준의 투자유치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송창의 무역협회 상하이지사장) 올 1~4월중 우리나라 기업들의 중국 투자액은 약 3억9천만달러.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94%나 늘었다. 해외 생산기지 확보 등을 위해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도 있지만 윤 사장처럼 한국의 나쁜 경영 여건을 피해 공장을 옮기는 기업인들도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물론 중국에 진출했다가 상 관행 등을 몰라 실패한 기업들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기업은 보다 좋은 경영 조건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 자본은 줄어들고, 한국기업들은 자꾸 밖으로 나가려 하는 최근 현상은 우리가 자초한 당연한 결과다. '아직도 한국에서 기업을 하십니까'라는 자조석인 이야기를 결코 흘려 듣지 말아야 한다. 상하이=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