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와 현대자동차라는 공룡 기업간의 자존심을 건 철강전쟁이 실무협상이라는 요식 절차만 남겨두고 사실상 타결됐다. 지난 2000년 11월 포스코가 현대하이스코(옛 현대강관)에 기초 철강소재인 핫코일 공급을 거부하면서 마찰이 빚어진 지 2년반 만이다. 당시 자동차용 기초소재를 자체 확보하려는 현대차측 입장과 차세대 고부가 제품시장을 양보할 수 없다는 두 대기업간 대립은 자존심 다툼의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재계의 핫이슈로 부각됐었다. 이번 합의 도출은 명분없는 싸움에 종지부를 찍고 현실적인 실리를 챙기겠다는 양사 경영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선 중장기 목표인 '글로벌 톱5'달성을 위해 중국 베이징과 미국 앨라배마에 현지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현대차로서는 당장 안정적인 자동차용 강판 공급처를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내부에서 제기됐다. 특히 중국 공장의 경우 오는 2005년 약 50만대의 자동차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가 11월 베이징 공장 가동을 준비하고 있지만 계획된 생산량이 20만t에 불과한 데다 추가 설비투자 계획이 없어 절대적인 물량을 외부에 의존해야 한다. 현대차로서는 포스코를 끌어들여 자동차용 강판 조달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05년 가동되는 앨라배마 공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미국 현지업체보다 가격과 품질경쟁력이 뛰어난 포스코 미국생산법인(UPI)으로부터 열연 및 냉연강판을 공급받는 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포스코의 냉연강판은 현지 제품보다 7.7%,열연강판은 6.1% 가량 싸다는 게 현대차의 분석이다. 포스코도 최대 수요업체인 현대차와의 갈등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안정적인 판로를 잃게 된다는 부담이 컸다. 포스코는 연간 현대차에 34만t,기아차에 24만t의 자동차 강판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고부가 제품인 자동차 냉연강판의 매출 비중을 보다 확대하기 위해서는 현대차와의 '관계 복원'이 절실하다는 게 내부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게다가 이 사건과 관련,대법원에 계류 중인 공정위와의 행정소송이 포스코에 불리하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포스코로선 큰 부담이었다. 대법원 최종판결에서마저 패소할 경우 기업 이미지에 타격만 입게 되고 핫코일 공급을 거부할 명분도 잃게 된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결국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판결에 연연하지 않고 대화를 통한 해결이 바람직하다는 데 의견일치를 봤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