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5:53
수정2006.04.03 15:56
지난 4월 17일 시작된 대북송금 의혹사건 특검수사는 방대한 수사 규모 못지않게 다양한 뒷얘기를 낳았다.
수사 초기 특검사무실과 기자실이 다단계업체가 입주한 건물에 자리잡은 것부터 이야기 꽃을 피웠다.
기자들과 특검팀이 한대의 엘리베이터를 독점하는 바람에 이를 둘러싼 입주자들과의 실랑이가 끊이지 않는가 하면 빌딩 지하에 위치한 식당가는 '특검 특수'를 맞기도 했다.
특검 취재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한 소환자들의 백태도 이어졌다.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은 특검조사 뒤 밤늦게 귀가하면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기자들을 피하기 위해 조명도 켜지지 않은 15층 계단을 걸어내려오기도 했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은 기자들의 질문세례를 피해 심야에 자동차들이 내달리는 8차선 도로를 무단횡단, 보는 이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뒷얘기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지난 18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지법 법정에 들어서면서 밝힌 소회였다.
박 전 장관은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며 조지훈의 시 낙화(落花)를 인용해 자신의 심경을 피력했다.
박 전 장관이 말한 '꽃'의 의미에 대해서는 한때 '대통령(代統領)'이라는 별칭을 들으며 국정을 장악했던 자신의 처지라는 해석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는 해석, 그리고 좌초위기에 몰린 햇볕정책을 의미한다는 등의 갖가지 해석이 나왔다.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소환과정에서 보인 행동도 이야깃거리였다.
이 전 수석은 "북송금 과정을 김 전 대통령에게 사전보고했는냐"는 기자의 질문에 느닷없이 "제가 십자가를 지겠다"며 때아닌 '십자가론'을 주창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