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이 파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각국 정부가 내놓은 연금개혁안에 대해 노동조합들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총파업은 노조가 얼마나 강한 조직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근대적 의미의 노조가 설립된 것은 19세기다. 당시에는 계급간 갈등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노조가 큰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현재 선진국에서는 근로자의 권리 쟁취와 근로기준 확립 등은 이미 달성된 목표가 돼 버려 노조의 입김도 사그라들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총파업은 정치적 주장을 강력히 표현하기 위한 '공격적인 방법(offensive way)'으로밖에 해석되지 않고 있다. 한 마디로 '불법 방해행위(nuisance)'로 여겨진다. 이같은 견해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정치운동으로서의 노조활동이 기력을 다해가고 있는 것이다. 좌파 성향의 정부도 노조와의 연관성에 대해 거북스러워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임금 인상만을 추구한다면 노조는 조합원들에게 혜택을 가져다 주는 효과적인 단체가 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어려운 과제가 돼 버렸다. 규제완화와 민영화,기술발전과 무역개방 확대 등은 독점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경쟁을 도입시켰다. 때문에 노조의 활동영역도 더욱 축소되고 있다. 친(親)노동자 위주 정책을 펴야 하는 노조는 해당 제품의 가격인상 등을 요구해야 하기 때문에 동시에 반(反) 소비자 정책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노조의 영향력이 가장 강력한 공공부문은 세금 납부자들이 재정적 지원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변했어도 노조는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일관해 왔다. 대부분 남성들로 지도부가 구성돼 있어 교조적인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이 변했어도 전혀 변하려는 시도는 보여주지 못해 비판을 받는다. 여성 및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행스럽게도 노조는 더 이상 계급투쟁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더욱이 시장에서 정해주는 이상으로 노조 회비를 거둘 수도 없는 시대가 됐다. 이제는 노조원들이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은 노조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노조 집행부가 이라크 전쟁이나 유럽연합(EU) 헌법 제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노조원들까지 이와 관련한 운동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는가. 회사 경영진과의 협상 등에서는 노조가 여전히 효과적인 기구다. 노조원들은 노조 집행부가 회사측과의 상호 파괴적인 대립보다는 미래를 위한 협력관계를 다져주길 원하고 있다. 노조원들은 보험 연금 세금 수당 법률문제 등 일상 생활과 관련이 깊은 일들로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노조 집행부는 깨달아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노조가 극단으로 치닫게 만든 데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노조가 법의 지배로부터 면죄부를 받도록 유도했다. 각국 정부는 노조의 협박에 맞서 공정한 법 집행을 해야 하며,더 늦기 전에 노조 활동이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체제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협박을 통해 권리를 쟁취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정리=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 -------------------------------------------------------------- ◇이 글은 이코노미스트지 최근호에 실린 'Trade unions:Adapt or die'란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