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사회복지를 말하고 공해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려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좀 여유가 생겼다는 이야기이다. 여러 가지 나라 문제의 근본은 경제다. 만일 경제가 북한처럼 말이 아닌 상태라면 복지고 공해고 문화예술이고 생각해 볼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의 근본은 과학기술이다. 아주 싼 임금으로 양질의 노동력이 풍부한 환경에서는 과학기술 없이도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의 60년대 70년대가 그랬고,지금 중국이 그렇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인건비가 비싸고,노동조합의 힘이 세고,국민 의식구조나 생활양식이 고급화됐기 때문에 기술적 뒷받침 없는 제품으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을 할 수 없게 돼 버렸다. 그러나 근본 중의 근본인 과학기술에 대해 국민과 기업과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해 걱정된다. 한 예로 학생들은 이공계 진학을 기피하고 있다. 이공계로 진학하면 장관과 국회의원 되기 힘들고,회사 사장도 되기 힘들며,의사 변호사나 금융컨설턴트 등에 비해 수입도 적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다 제조업들이 공장을 외국으로 옮기고 있어 이공계생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정부는 선거 때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과학기술투자를 GDP 대비 몇%로 늘리겠다는 약속을 해왔고,그것이 거듭된 덕분에 상당한 규모의 예산이 확보돼 있다. 하지만 기획예산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도 과학기술예산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각 부처의 과학기술예산을 합치면 5조3천억원 정도 된다고 했다. 이 숫자가 확실한 지는 모르나 과기부 산자부 정통부 등 주요 부처는 1조원 정도씩 예산을 쓰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이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며,우리경제에 어떻게 기여하는 지 대단히 궁금하다. 짐작컨대 상당부분이 대학교수와 정부출연연구소로 가고,일부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 예산이 우리 경제발전에 보다 효과적이고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은 없을까?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간단한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 과학기술예산 중 기초과학부문은 논외로 하고,응용기술부문은 '원쿠션 투입방식'을 시행해 보라는 것이다. 정부가 대학교수와 정부출연연구소에게 응용기술 연구비를 지원할 때 기업체를 통해 주게 하는 방식이다. 바꿔 말하면 기업을 사이에 두고 원쿠션을 넣자는 것이다. 그러면 기업은 꼭 팔릴 만한 물건을 만들게 하여 과학기술예산은 바로 경제발전에 활용될 것이다. 대학교수들은 학술잡지에 내는 논문수로 평가된다. 그러므로 대학교수에게 돈을 주면 1차적으로 논문 쓰는데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다른 한편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들은 남이 안해본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데 관심이 높다. 그것이 어쩌면 민간회사에 안가고 정부출연연구소에 가는 첫째 이유일 것이다. 정부는 정부출연연구소한테 가급적 민간과 공동연구하라고 주문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본 민간회사는 연구개발 방향이 맞지 않아 흥미를 잃은 경우가 많다. 민간회사는 오늘 당장 팔 수 있는 물건을 원하는데,정부출연연구소는 남이 안만든 새 기술을 개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註)를 달 필요가 있다. 그것은 논문을 쓰는 일과,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일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러한 기초연구와 아울러,제품개발에 직결되는 효과적인 투자의 필요성과 그 방법을 강조하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산업기술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여럿 있다. 이스라엘은 과거 통신부장관 아래 과학담당관을 두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회사에 정부예산을 지원해 주었다. 80년대 호주정부는 기업이 기술개발부문에 투자하면 투자액의 1백50%를 세금에서 감면해 주었다. 또 EU에서는 연구기금을 마련하여 두 개 이상의 회원국 기업들이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하면 지원해주는 제도를 운영했었다. 이것은 80년대 초의 이야기로서 호랑이 담배 피우던 때의 잠꼬대일지도 모른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5조원이 경제를 살리는데 보다 유용하게 쓰이도록 하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