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속에서 협력관계로.' 해방 이후 일본 기업의 기술과 부품·기계산업 등에 종속당했던 한국 기업들이 기술력 등을 바탕으로 최근 일본 기업들과 대등한 제휴관계를 시도하고 있다. 한·일 기업간 협력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전자업종.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 들어 일본 업체와의 제휴 및 협력방안을 잇따라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자제품전시회인 CES 2003에 'DVD램'의 원천기술을 가진 일본 마쓰시타와 협력해 만든 'DVD리코더(녹화기능이 있는 DVD플레이어)'를 출시했다. DVD플레이어를 급속하게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DVD리코더 시장은 현재 마쓰시타 히타치 도시바 진영(DVD램)과 파이오니어 필립스 HP 델 진영(DVD RW)이 DVD기록 표준 방식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과거 VCR 기록표준인 VHS방식과 베타(β)방식을 두고 벌어진 경쟁과 비슷하다. 삼성전자는 마쓰시타와의 협력을 통해 표준화경쟁에서 우위를 확보,DVD시장을 제패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이어 3월엔 일본 NTT도코모와 'i-모드(도코모의 독자적인 모바일 인터넷 플랫폼)용 듀얼모드 휴대폰'을 공동 개발,내년 상반기 유럽지역에 출시키로 했다. 또 4월엔 일본 산요전기와 가정용 에어컨 분야에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LG전자는 지난달초 소니에 PDP모듈과 PDP세트를 월 1만대(약 7백억원)씩 공급키로 했다. LG전자는 그동안 LCD모니터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공급하면서 소니의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켰다. 자동차 업종에서도 양국 기업간 협력은 시작됐다. 현대자동차는 올 3월 현대모비스 및 미쓰비시자동차와 제품 개발과 생산·판매·구매부문에서 상호 협력 관계를 맺었다. 김동진 현대차 사장과 랄프 에크로트 미쓰비시 사장이 일본 미쓰비시 본사에서 공동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미쓰비시는 이 계약으로 향후 5년간 3사간의 정기적인 대화와 협력 창구를 유지키로 했다. 현대차는 미쓰비시와의 제휴를 통해 여러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쓰비시도 앞으로 3사가 많은 분야에서 상호 협력함으로써 기술적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각 업종에서 활발한 협력이 모색되고 있지만 이를 더욱 활성화하려면 한국의 대일무역 역조 등 양국 기업 간 협력에 걸림돌이 되는 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와 관련,지난 달 30일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은 주한 일본기업 대표들과의 조찬간담회에서 한국의 대일무역 역조 문제를 풀기 위해 일본 부품·소재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일본의 부품·소재 분야 기업들이 공동으로 투자할 경우 부품·소재 기업 전용단지를 마련해 저렴한 임대토지를 제공하고 외국인 투자지역 지정요건을 현행 5천만달러에서 3천만달러로 조정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앞두고 열린 이날 모임에서 윤 장관은 "한국은 취약한 부품·소재 산업을 육성하고 일본은 글로벌 소싱으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어 양국이 '윈윈'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