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4:36
수정2006.04.03 14:39
서기 2199년 매트릭스 공간의 고속도로.
주인공 모피어스와 트리니티가 매트릭스 시스템의 요인들을 꽁무니에 달고 질주한다.
요인들의 총은 연신 불을 뿜어댄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15분간 이어지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결국 모피어스와 트리니티가 탄 승용차는 벌집 신세를 면치 못하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되는데...
지난 23일 국내 개봉된 SF액션영화, '매트릭스2-리로디드'의 한 장면이다.
1999년 4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매트릭스 속편은 최첨단 특수효과가 한층 가미돼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특히 현란한 특수효과와 액션연기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GM의 캐딜락CTS와 에스컬레이드다.
스포츠 세단인 캐딜락CTS는 주인공들의 차로, SUV인 에스컬레이드는 악당들의 차로 출연한다.
이중 캐딜락CTS는 독특한 외관과 성능으로 첨단 미래 자동차로서 전혀 손색없는 연기를 펼쳐 보이며 영화를 빛낸다.
GM은 영화 역사상 최고의 카액션으로 평가받는 이 장면을 찍는데 캐딜락CTS와 에스컬레이드를 무려 24대나 투입했다는 후문이다.
캐딜락 모델은 지난 1백년간 1백개가 넘는 영화에 등장했으나 이번만큼 많이 동원된 적은 없었다.
기존의 중후하고 고풍적인 제품 이미지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젊고 역동적인 모습을 구축해 판매증가 효과를 노린 고도의 전략이다.
실제로 굵은 선이 돋보이는 과감한 디자인의 캐딜락CTS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GM코리아가 수입해 대우자동차판매 등을 통해 팔리고 있다.
주요 타깃은 역시 젊은층.김근탁 GM코리아 사장은 "매트릭스2의 개봉으로 두 차종의 판매가 더욱 활기를 띨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처럼 PPL(Product Placement)은 자동차 홍보와 판촉의 중요한 수단으로 각광받는다.
PPL이란 영화나 TV드라마에 차량을 지원해 간접광고 효과를 노리는 마케팅 기법으로 국내 드라마에서도 PPL 수입자동차를 어렵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우디 수입업체인 고진모터임포트는 뉴아우디 A8를 한국에 출시하기 전부터 국내 드라마에 등장시켜 히트를 쳤다.
최근 종료된 인기드라마 '올인'에서 주인공 김인하(이병헌 분)의 성공을 상징하는 차로 소개됐기 때문.
고진모터임포트는 독일 본사로부터 뉴아우디 A8 한대를 비행기로 특별히 공수하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선박보다 운송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 비행기로 차를 들여온 것도 이례적이었으나 드라마를 통해 처음으로 선보인 것도 드문 일이었다.
BMW코리아는 98년 '별은 내 가슴에'라는 드라마에서 스포츠카 Z3를 출연시키면서 수입차 PPL의 물꼬를 텄다.
이후 '가을동화'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협찬을 해 왔다.
판매효과도 톡톡히 봤다.
'위기의 남자'에서 출판사 사장으로 출연한 탤런트 신성우가 BMW의 SUV인 X5를 타고 등장한 이후 판매량이 평소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한다.
BMW코리아는 현재 절찬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천년지애'에도 Z3의 후속모델인 Z4를 출연시켜 신차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드라마 PPL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겨울연가'에 등장했던 포드의 SUV인 뉴익스플로러 흰색모델.
주인공 배용준의 애마로 등장한 후광에 힘입어 젊은 층의 구입이 폭증했다.
출고하는 데만 두달 이상 기다려야 했다.
렉서스는 미국의 20세기 폭스사가 제작하고 톰 크루즈가 주연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미래형 렉서스를 선보여 각광을 받았다.
영화의 배경인 2054년 2인용 고성능 스포츠카 모델로 개발된 미래형 렉서스는 환상적인 디자인으로 렉서스가 추구하는 미래의 혁신적인 이미지를 알리는데 성공했다.
렉서스는 이어 올여름 최고의 블록버스터로 기대하고 있는 '터미네이터3'에 렉서스의 보석이라는 하드탑 컨버터블, SC430을 협찬했다.
터미네이터3의 감독 조나단 모스토도 소유한 SC430은 'T-X'로 명명된 터미네이트릭스(여성터미네이터)와 함께 위용을 뽐낼 예정이다.
PPL의 엄청난 효과에 고무된 자동차 업체들은 인기를 모을 만한 영화나 드라마를 찾는데 심혈을 기울일 정도다.
단순한 차량 협찬을 넘어 일부 제작자금까지 지원될 전망이다.
수입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PPL 경쟁이 워낙 치열해 제작사들이 거꾸로 제작 지원금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외 자동차 메이커들의 다음 PPL이 궁금해진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