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4:04
수정2006.04.03 14:06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지리정보제공 벤처기업 B사의 대표 K사장(37.여)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직원들을 큰소리로 질책했다.
부서간 협조가 제대로 안되고 지시한 업무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게 그 이유였다.
평소 같으면 그냥 말 한마디 하고 넘어갔을 K사장이었다.
그러나 화사한 봄날씨가 이어지면서 K사장은 일에 대한 의욕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사업이 지긋지긋해지면서 만사가 귀찮아졌다.
이뿐만 아니다.
만산(晩産)으로 인한 우울증까지 겹쳤다.
그는 현재 임신 4개월이다.
봄을 맞아 우울증에 시달리는 환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우울증을 도시생활이 몰고온 현대병 정도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칫 잘못했다간 치료 시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울증은 성인의 약 11% 정도가 한 번쯤 앓았을 정도로 매우 흔한 병이다.
그래서 '마음의 감기'로 불리기도 한다.
현대인들의 가장 흔한 정신과 질병인 셈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발표에 따르면 우울증은 만성 질환 가운데 고혈압, 당뇨에 이어 세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보통 우울증 하면 '주부우울증'처럼 여성이 많이 앓는 정신질환으로 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의 경우 5∼9%가 우울증 환자로 알려져 있다.
남성은 2∼3%로 여성에 비해 훨씬 적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엔 경기침체 장기화로 인한 기업의 구조조정, 가족간 대화 부재 등으로 인해 중년 남성들의 우울증상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 증상과 원인
우울증이란 침울 슬픔 죄책감 자기비하 등을 특징으로 하는 심각하면서도 만성적인 이상 심리상태다.
우울증에 걸리면 저조하고 침체된 기분이 거의 매일 지속되고 일상생활에 대해 관심이 없어진다.
이유 없이 불안하고 초조한 느낌이 들며, 잠을 잘못 자고 쉽게 피곤한 상태가 계속돼 사회생활에 장애를 일으킨다.
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뇌의 신경전달 물질이나 뇌 호르몬과 같은 생화학 물질에 의한 생물학적 요인과 부모로부터 계속되는 유전적인 요인, 스트레스나 성격과 같은 심리사회적 요인 등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 증세가 최소 2주간 계속되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우울증에 걸렸다고 볼 수 있다.
극도의 우울감, 흥미 상실, 체중감소, 수면장애, 죄책감 등이 이어지는게 보통이다.
우울증을 앓다가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우울증 환자의 10% 정도가 자살 충동은 물론 피해의식, 망상, 환청, 환각이 동반되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
홍콩 배우 장궈룽도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다 투신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32세 젊은 나이에 자살한 가수 김광석 역시 절망감과 우울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치료
의사로부터 우울증 진단을 받은 상태라면 결코 저절로 치료되기 어렵다.
따라서 우울증은 조기에 치료를 받는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과를 기피해 증상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은 발생 후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아도 평균 12개월 정도 지속되다가 저절로 좋아지기도 한다.
그래도 약물치료나 상담치료를 통해 우울증상이 지속되는 기간과 정도를 감소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히 치료하지 않을 경우 나중에 아주 작은 스트레스에도 다시 우울증상이 재발해 만성적인 경과를 보이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제때에 약물치료를 할 경우 우울증상의 지속 기간은 평균 3개월로 짧아지고, 가벼운 우울증은 더 빨리 사라지기도 한다.
심한 우울증은 약물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계속되기도 한다.
스트레스의 영향이 클 때는 항우울제와 같은 약물치료뿐 아니라 정신상담이나 인지치료를 함께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약물요법으로는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등을 사용할 수 있다.
약물마다 효과와 부작용이 다르고, 환자마다 증상이 다양해 같은 우울증이라 해도 다른 약물이 처방된다.
예전에는 약물치료에 졸음 입마름 같은 부작용이 심했으나 최근엔 이 같은 문제점들이 대부분 해결됐다.
정신치료는 의사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게 되는데 도움을 준다.
치료만큼 중요한게 예방이다.
합리적인 사고와 함께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면서 운동이나 취미, 종교생활 등을 적절히 하면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다.
[ 도움말 = 세종병원 신경정신과 김효정 과장, 오강섭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 김형섭 용인정신의학연구소장 ]
김문권 기자 mkk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