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금융정책이 채 시동을 걸기도 전에 깊은 딜레마에 빠졌다. 관치(官治)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카드사 유동성 지원대책을 내놓았는데도 시장불안이 확실하게 가라앉지 않는 데다, 신용불량자 문제 역시 뾰족한 해결책 없이 마냥 표류하는 양상이다. 여기에다 앞으로 닥칠 생명보험사 상장, 투자신탁회사 구조조정 등 산적한 현안들도 각계의 이해가 엇갈리고 있어 처리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 겉도는 신용불량자 대책 날로 늘어만 가는 신용불량자에 대한 정부 대책은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신용회복지원(개인워크아웃)을 늘리고 신용불량자로 등록되기 일보직전인 사람에 대해 대환대출을 권장하는 식의 단기 처방은 말 그대로 '응급처방'일 뿐임을 금융당국도 인정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는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20∼30대 신용불량자 가운데 회생의지가 있는 사람을 선별, 구제한다는 방침을 정해놓고 정책 보완을 계속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 시장 자율이냐 관치냐 지난 4월3일 정부가 신용카드사 및 투신사 유동성 지원을 위한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은 직후부터 제기된 '관치금융' 논란도 금융정책당국의 운신을 어렵게 하고 있다. 시장 자율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할 시점에서 정부가 은행을 동원, 카드사 등에 유동성을 지원토록 함으로써 구조조정 의지를 퇴색시켰다는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 재경부와 금감위측은 "금융시장이 무너질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수행한 위기관리 기능까지 관치로 몰아세우는 것은 지나치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지만 "관치 시비로 인해 후속 대책을 마련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 관계자는 털어놨다. 공공연한 비밀인 '은행들에 대한 주식투자 독려'에 대해서는 정부 내에서조차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에서는 수익성 경영을 강조하면서 뒤로는 은행에 주식 투자를 독려하는 이중성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계에서는 최근 몸져누운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은행돈의 주식투입과 관련, 정부에 밉보였다는 소문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 생보사 상장과 투신 구조조정 딜레마 금융당국의 또 다른 고민은 아직 시작도 못한 삼성 및 교보생명 상장 논의의 재점화와 투신 구조조정이다. 생보사 상장의 경우 지난 99년 정부와 해당 생명보험사가 한치의 양보없이 대립했던 현안인 만큼 이번에 논의를 시작하면 결론을 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괜한 논쟁의 불씨만 제공할 수 있어 정부 스스로 난감해 하는 눈치다. 이 때문에 상장논의를 다시 연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한국투신증권과 대한투신증권을 정점으로 하는 투신구조조정은 조속히 추진할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공적자금 마련이 선결돼야 한다는 점이 정부를 짓누르고 있다. 아무리 필요성이 강해도 현재로선 손을 쓸 수 없다는게 정부측 입장. 이에 반해 금융시장에서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더 이상 투신구조조정을 늦춰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